지난 19일 오후5시30분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LG전자 사무실. 사내 방송을 통해 한 독일인 직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살던 독일에서는 가족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이고 중심입니다. 일찍 퇴근해 가족과 많이 대화하고 더 시간을 보내세요.” 일주일에 하루 수요일 정시에 퇴근하는 ‘가정의 날’을 알리는 사내 방송에 깜짝 등장한 외국 직원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에 사무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일부 임직원들은 “오늘만이라도 좀 일찍 가자”며 귀가를 서둘렀다.
LG전자가 가정의 날로 정한 수요일에 직원들의 정시 퇴근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제대로 쉬어야 제대로 일도 한다는 취지에서다.
지난해부터 실시 중인 가정의 날 제도는 매주 수요일 정시 퇴근을 장려하고 부서회식도 금지된다. 퇴근 시간에는 사내방송을 통해 퇴근하는 분위기를 유도한다. 임원까지 사내 방송에 나와 퇴근을 권유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잡고 근무 ‘시간’이 아니라 ‘효율성’을 중시하기 위한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시작됐다.
하지만 업무가 많은 임직원들은 정시 퇴근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토로한다. LG전자는 정시 퇴근을 장려하기 위해 수요일 퇴근 시간 후에는 사무실 강제 소등까지 실시하고 있지만 일부 임직원들은 개인 스탠드를 켜고 일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가정의 날이라 일찍 퇴근한다고 해서 처리해야 할 일을 안 해도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사업 계획을 짜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10~11월은 정시 퇴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최근 사내 부서 이동으로 인력 규모가 줄어든 스마트폰 사업 담당 MC 사업본부 등은 업무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독일인 직원까지 나와 가족과 시간을 보내라고 하고 권유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정시 퇴근을 장려하고 제도화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지만 그에 앞서 제도가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업무량이나 처리 방식을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