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10월 언론사 PD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나희선씨는 게임 방송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구글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앞으로는 방송사보다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일이었다. 그가 10대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주제로 재미있게 보는 게임 방송을 만들어 3년 만에 125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1인 창작자 ‘도티’다. 그는 자신과 같은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1인 창작자(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스타 크리에이터로 키우는 소속사인 ‘샌드박스’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현재 60명의 1인 창작자와 이들을 관리하고 수익 모델을 만드는 30명의 직원을 둔 회사로 성장시켰다.
누구나 동영상 플랫폼에 방송 채널을 개설한 뒤 영상 콘텐츠를 제작, 송출하는 ‘1인 창작자’가 2,000명을 넘어섰다. 검색을 할 때 네이버가 아닌 유튜브를 떠올리는 10대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병맛’, ‘저퀄(낮은 퀄리티)’ 등으로 대표되는 B급 문화가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급성장했다. 최근에는 ‘양띵(구독자 174만명)’ ‘영국남자(156만명)’ ‘대도서관(136만명)’ 등 스타 크리에이터뿐 아니라 구독자 10만명대의 크리에이터들이 늘어나면서 허리가 단단해지고 있다. 이제 1인 크리에이터는 부업이나 취미가 아닌 어엿한 직업으로, 크리에이터 산업은 하위문화가 아닌 미디어산업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한국전파진흥협회는 3월 보고서에서 1인 크리에이터를 1,857명으로 파악했고 현재는 2,000명이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크리에이터들의 기획사인 다중채널네트워크(MCN)에 소속돼 대다수가 전업 크리에이터이다. 초창기에는 ‘BJ(아프리카TV 1인 방송 진행자)’가 더 알려졌지만 유튜브와 아프리카TV에 동시에 방송을 내보내는 크리에이터들이 늘어나면서 1인 창작자로 불린다. 최근에 대도서관 등의 간판 BJ들이 불공정계약을 문제로 삼고 아프리카TV를 접고 유튜브에서만 활동할 것을 선언하면서 크리에이터들이 유튜브로 몰리고 있다.
유튜브를 활동무대로 선호하는 이유로 크리에이터들은 수익을 꼽는다. 특별한 제약 조건없이 클릭·조회수에 따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유튜브의 광고 과금 방식인 ‘트루뷰’는 구독자가 영상을 틀 때 나오는 광고를 ‘건너뛰기(스킵)’하지 않고 끝까지 시청하면 광고료를 준다. 수익의 55%가 크리에이터에게 돌아가며 이를 소속사인 MCN과 나누기도 한다.
취미로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벌이가 되지 않는다면 전업은 난관이다. 크리에이터들은 구독자 10만명을 전업을 결심하는 지표로 삼는다. 프로그램 내에서 광고를 하거나 별도로 ‘브랜디드 콘텐츠(방송 포맷 내에서 브랜드를 알리는 네이티브 광고)’를 제작하기도 하며 커머스 산업에 진출해 상품을 팔기도 한다. 6월에는 다이아TV 소속 ‘회사원A’가 중국 타오바오의 티몰에서 라이브 방송을 해 커머스 데뷔를 하기도 했다.
기존 만화영화에 상황별 ‘병맛 더빙’을 입혀 18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장삐쭈’의 경우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팔기 위해 채널을 열었다가 그의 입심이 인기를 끌면서 전업한 사례다. 영화 리뷰 방송으로 인기를 끌면서 대기업을 그만두고 전업한 ‘백수골방(구독자 12만명)’은 “삼시 세끼를 해결할 수 있는 수익 지표를 확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면서도 “대기업에 다니는 또래보다 월 수익이 더 높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이디어 기획과 콘티·탈고까지 2~3일, 촬영·편집에 1~2일을 투자하는 많으면 매일, 보통은 일주일에 2~3편 이상 올리며 구독자를 유지한다. 규모가 커지면 1인이 아니라 팀으로 방송을 만들며 PD를 고용하기도 한다. 스타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의 경우 월수입이 5,000만원을 넘는다. 대도서관은 ‘엉클대도’라는 법인을 세우고 크리에이터 후배들을 양성하며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고 있다. 제작자이지만 얼굴이 알려지면서 스타성도 커진다. 대도서관은 BJ로 활약한 ‘윰댕’과의 결혼이 화제가 돼 방송으로 따로 편성되기도 했다. CJ E&M에 따르면 다이아TV 상위 5%(43팀) 크리에이터의 평균 월 수익이 910만원으로 지난해(630만원)에 비해 40% 이상 성장했다.
업계에 따르면 3월 기준 국내 유튜브 시장의 총수익은 1,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 중 MCN 사업자의 수익이 314억원에 달하며 유튜브 채널 상위 100위권 내에 30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지상파·종편의 유튜브 100위권 내 채널(29개)을 앞질렀다.
국내에서는 대기업인 CJ E&M이 지난해 5월 창립한 MCN ‘다이아TV’가 선도사업자로서 크리에이터만 860팀이 소속돼 고용 창출과 산업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전체 구독자수는 5,500만명에 달한다. 눈에 띄는 점은 구독자 10만명이 넘는 크리에이터가 125개팀으로 15%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외 MCN은 2014년 이후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CJ E&M에서 일했던 송재룡씨가 설립한 ‘트레저헌터’가 양띵,악어, 김이브 등 스타 크리에이터를 섭외한 뒤 중국 뉴미디어 기업과 손을 잡고 현지 시장 기반을 마련했다. 구독자 117만명을 확보해 아이들에게 인기를 누리는 ‘캐리와 장난감친구들’을 운영하는 캐리소프트 지난해 비해 매출이 70배가 늘었고, 도티가 창업한 샌드박스는 50배가 커졌다.
이외에도 네이버는 V앱으로 연예인들의 개인 방송에 이어 뷰티·패션 등 여러 장르의 크리에이터를 섭외해 판을 벌이고 있고 티비팟·카카오TV도 연예인을 내세운 MCN 사업에 뛰어든 상황이다.
내수 시장의 한계에도 MCN 시장 규모가 기존의 미디어 산업 규모를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최대의 MCN으로 8억2,000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메이커 스튜디오(Makers studio)의 경우 2014년 월트디즈니에 5억달러에 인수된 바 있다. 이들의 경우 구독자층이 10대에서 3040세대까지 확대돼 게임, 뷰티 등에 편중된 국내 MCN과 달리 가족 장르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렇듯 미디어 기업이 MCN을 인수합병(M&A)하면서 유튜브에만 의존하지 않고 버라이즌이 인수한 AOL이나 페이스북 등 여러 플랫폼에 진출하며 독자적 플랫폼으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보다 늦은 2011년 설립된 풀스크린은 7억2,000만명의 구독자를 대상으로 월정액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를 한다. 또 시청자의 성향을 분석해 기업이나 시장에 판매하는 미디어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공기관 홍보기획 관계자는 “공공기관까지도 기존의 블로그 등 전통매체를 통한 홍보기획 대신 동영상 플랫폼 기반으로 한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을 준비하고 있는 흐름”이라며 “국내에서도 브랜디드 콘텐츠뿐 아니라 미디어 컨설팅 등 MCN 산업이 갈 수 있는 미래를 무궁무진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아TV는 내년까지 소속 크리에이터를 2,0000팀으로 늘리고 3명 중 1명은 미국·중국·유럽 등 해외에서 활동하도록 하는 계획을 마련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구독자층이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중반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중국·대만 등 아시아권에 진출하는 크리에이터가 늘어나면 산업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