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
첫 창극 도전 싱가포르 옹켕센 감독 맡아
“미니얼리즘 구현, 판소리 아름다움에 집중”
국적·소재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공연을 펼쳐 온 국립창극단은 싱가포르예술축제와 손잡고 그리스 비극 ‘트로이의 여인들’에 도전한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그리스 비극 3대 작가 에우리피데스가 기원전 415년 선보인 희곡이다. 트로이 전쟁 신화와 전설을 기반으로 한 이 작품은 트로이왕국의 여인들이 승전국 그리스 노예로 끌려가기 전 몇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창작진의 면면부터 화려하다. 싱가포르예술축제 예술감독인 옹켕센이 연출을 맡았고, 배삼식(극본), 안숙선(작창), 정재일(작곡)이 함께한다. 처음 창극에 도전하는 옹켄센은 ‘미니멀리즘’을 이번 공연의 콘셉트로 내세웠다. 판소리 본연의 아름다움을 돋보이도록 음악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를 걷어내고 무대 미술 역시 간결하게 꾸밀 계획이다. 옹켄센은 24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1998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안숙선 명창의 ‘춘향전’을 보고 ‘언젠가 창극을 연출해보고 싶다’고 다짐했다”며 “그래서 이번 공연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창극의 중심이 되는 판소리는 한국만의 것이 아닌 세계 보편의 음악이라고 생각했다”며 “지금까지의 창극이 드라마에 집중해 너무 많은 악기 반주를 넣었다면, 이번엔 겹겹이 둘러싸인 층을 걷어내고 한 명의 창자에 하나의 안기를 연결하는 구조를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극을 ‘오래된 집’이라고 할 때, 그 위에 겹겹이 덧칠한 페인트를 지우고 집 본연의 모습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작창을 맡은 안숙선 명창도 “우리 고유의 소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펼쳐내려는 연출 의도에 감동받았다”며 “아비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던 심청이, 낭군을 기다리며 고초를 이겨내는 춘향이의 강인함을 트로이 여인들에게 투영해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아낼 것”이라고 화답했다. 트로이의 마지막 왕비 헤큐바 역은 김금미, 트로이 군대 수장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김지숙, 저주받은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는 이소연이 맡았다. 특히 트로이를 무너뜨린 절세미인 헬레네 역은 여배우가 아닌 국립창극단 대표 남자 배우 김준수가 맡았다. 11월 11~20일 국립극장 달오름.
■국립국악원 ‘레이디 맥베스’
자연음향 새단장 ‘우면당’ 개관 기념작
소리꾼 시김새 등 ‘원음의 감동’ 선사
국립국악원은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맥베스’를 비튼 연극 ‘레이디 맥베스’를 창극으로 선보인다. 한태숙 연출의 1988년 초연작 ‘레이디 맥베스’는 남편을 부추겨 왕위 찬탈을 꾀하다 스스로 죄의식에 함몰돼버린 맥베스 부인에 초점을 맞춘 심리극이다. 1999년 서울연극제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을 받은 데 이어 그동안 폴란드·일본·싱가포르·뉴질랜드·호주 등에서 초청 공연을 펼치며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창극 ‘레이디 맥베스’도 소리에 초점을 뒀다. 이번 공연은 자연음향 공연장으로 새롭게 단장한 국립국악원 우면당의 개관 기념작이기도 하다. 우면당은 마이크와 스피커 등 인위적인 음향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우리 소리의 울림을 원음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소리꾼의 시김새(꾸밈음 또는 잔가락)나 떨림까지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어 기존 기계 음향보다 한층 풍성한 음악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게 국악원의 설명이다. 창극 ‘레이디 맥베스’의 연출·출연진도 탄탄하다. 연극 연출을 맡았던 한태숙이 창극 작업도 지휘하며, 국립국악관현악단 부지휘자 출신의 계성원 작곡가가 음악 구성을 담당한다. 의상은 정구호, 무대는 이태섭이 맡는다. 주인공인 레이디 멕베스 역엔 창극 ‘메디아’와 ‘춘향’ 등에서 폭넓은 연기와 소리로 주목받은 소리꾼 정은혜가 낙점됐고,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염경애 명창이 ‘도창’역 맡아 함께 극을 이끌 예정이다. 또 연극배우 정동환이 전의(典醫·왕의 의사)역과 맥베스 역을 맡아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12월 21~30일 국립국악원 우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