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이신우 칼럼] 부처가 아프니 중생도 아프네요

산문폐쇄, 화쟁위 모두 자기모순


지난 2008년 여름, 서울의 조계사가 갑자기 '산문(山門) 폐쇄'를 발표했다. 불법·폭력시위 조종 혐의를 받고 있는 수배자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던 조계사 주변에 대해 경찰이 검문·검색을 강화하면서 조계종 총무원장의 차량을 세워 차 안과 트렁크를 검색하는 일이 벌어진 직후였다. '경찰이 감히…'라는 분노의 표시였던 셈이다.

산문폐쇄는 절의 문을 닫아버린 채 속세나 대중과의 소통을 끊어버리겠다는 의미다. 신도들과의 접촉을 막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네끼리 자급자족하며 도를 닦아 성불(成佛)하되 중생의 처지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입장 표명이다.

하지만 산문폐쇄는 대승불교에 있을 수 없는 자기모순이다. 보살행이라는 단어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덕을 완성해 궁극적 깨달음의 경지를 실현하는 것이라면 보살의 중생 구제는 그 자체가 성불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조계사의 산문폐쇄 엄포가 며칠도 못 가 흐지부지 끝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 조계종이 이번에는 비슷한 사건을 두고 산문폐쇄 대신 '화쟁(和諍)위원회'를 전면에 내세웠다. 19일 대규모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한 후 조계사로 도망친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의 중재 요청을 받아들여 "당사자·정부 등과 함께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지혜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한씨는 "언제든 노동자·민중이 분노하면 서울을, 아니 이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자"며 과격 시위를 선동한 범죄자다. 도대체 언제부터 화쟁의 논리가 범법과 준법을 뒷거래시키는 용도로 탈바꿈하게 됐는지 돌아가신 원효 스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고려 무인정권 시절 한국 불교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신앙결사' 운동이 벌어진다. 나중에 보조국사가 된 지눌(知訥)은 25세 때인 1182년 승려들의 부패, 타락상을 비판하면서 속세의 명리를 털어내고 수행에 힘쓰자고 제안했다. 정혜결사의 출발이었다. 지눌은 전남 순천의 조계산에 수선사를 중수하고 그곳을 결사의 본부로 삼는다. 지금의 조계종이다. 현재의 송광사가 수선사의 전통을 이어받은 곳이다.

그런데 이 결사를 눈여겨본 것이 당시 무인정권을 이끌던 최우(최이)였다. 그는 당시 불교 최대 종파인 화엄종으로부터 심각한 정치적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수도 개경은 도시 외곽에 수많은 사찰이 들어서 있었고 이들 대부분이 화엄종을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우 정권으로서는 하루도 편히 잠들 분위기가 아니었다.

최우는 자연히 신흥 종파인 조계종의 성장세에 주목하고 이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아낌없이 물질적 지원을 베풀었다.

나중에 정혜결사의 2대 사주 혜심(惠諶)이 최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정치와 종교가 얼마나 유착돼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정치는 날로 공평해지고 있으며 모든 일은 겉의 화려함을 버리고 열매를 취하고 있습니다. 시골의 무지한 촌부나 어린아이에게 이르기까지 그것을 칭찬하지 않음이 없으니…."

조계종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조계사 주변을 개발하는 '역사문화 관광지사업' 협약을 맺고 서울시가 3,500억원가량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발표한 것이 2년 전 9월이었다. 그런 불교 현장을 목격하면서 같은 시기 '직지심경'의 해설서 '직지, 길을 가리키다'라는 책을 펴냈던 이시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경향신문과 인터뷰(2013년 9월13일자)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 불교는 아직도 대규모 사찰과 거창한 불상을 세우는 데만 관심을 갖는 옛날식 불교다. 지적 탐구심과 호기심을 일으킬 수 있는 게 없다. 계속 이러다가는 불교가 연기법(緣起法)에 따라 자연도태될 수도 있다."

화쟁위가 한 민노총 위원장을 조계사 품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중재 입장을 밝힐 때였다. 필자가 놀란 대목은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부처님은 고통 받는 중생을 끌어안는 것이 붓다의 존재 이유라고 하셨다"고 강조하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조계사가 언제 한번 폭력 시위대에 의해 두들겨 맞고 부상당한 의경들을 위해 화쟁위를 통해 가슴 아프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본 적 있는가.

시위 현장마다 따라다니며 어린 의경을 때리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의경의 어머니들 모습쯤이야 화쟁위에는 보이지도 않는가보다.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픈 법이다.

/이신우 논설실장 shinw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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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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