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내수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벤처 스캔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벤처 투자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지난 4월 일어난 호창성 사건은 최근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그 여파로 올해 8월에 진행한 중소기업청 팁스(TIPS·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서 벤처캐피털(VC)의 추천을 받은 스타트업이 상당히 줄었다. 또 최근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의 장외주식 사기성 부당거래와 관련해 VC들이 연루됐다는 의혹도 일고 있어 벤처 투자가 움츠러들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2조원대를 넘어서며 꾸준히 증가했던 벤처 투자 규모도 올 들어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1일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벤처 신규 투자 규모(월별 누적 기준)가 3월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벤처 투자 규모는 비수기인 1월에 지난해 같은 달보다 52.9% 증가한 데 이어 2월까지도 11% 증가했다. 하지만 3월 4.2% 감소세를 보인 데 이어 호창성 사태가 있었던 4월부터 감소 폭이 커지고 있다. 4월에는 7.5%, 5월에는 14.7% 줄어들었으며 6월(-4.5%), 7월(-7.8%), 8월(-8.0%)을 거치면서 올 9월까지 신규 벤처 투자 규모는 1조4,81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5,583억원)보다 4.9%가 줄었다.
중소기업청이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진행하는 팁스 프로그램에서도 스타트업들이 지원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팁스 프로그램은 스타트업이 팁스 운영사인 VC에 추천을 받아 이 가운데 선별된 업체들만 중기청 팁스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는데 올 8월에 진행한 팁스 사업에서는 추천 업체 수가 크게 줄었다. 지난해에는 운영사 21개가 102개 스타트업을 추천했지만 올해는 83개로 줄어 스타트업들이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통로가 줄고 있는 것이다.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가 지난 4월 팁스 프로그램 자금 운용과 관련해 알선수재 등의 법률 위반으로 기소됐다가 최근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영향이 업계에 전달된 것이다.
올해 팁스 프로그램에 지원한 한 스타트업 대표 “호창성 사건 이후로 팁스 운영사에서 추천하는 스타트업의 수가 확실히 줄어들어 투자받기가 상당히 어려워졌다”며 “팁스 운영사들의 투자 기준도 강화돼 팁스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전에 투자확약서는 작성하지만 팁스 프로그램에서 탈락하면 투자를 철회하겠다는 것을 명시하고 투자를 진행하는 운영사들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벤처 투자가 위축된 것은 국내 주식시장 부진 등 벤처 업계 전반에 악재가 많았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우선 벤처 투자 시장의 특성상 주식시장과 궤를 함께 하는 데 올 들어 증시에서 부정적인 이슈가 많았다. 여기에 호창성·이희진 사태까지 터지면서 VC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증폭됐다. 벤처캐피탈협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올 들어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이슈가 많아지면서 벤처 투자시장을 위축시켰다”며 “또 호창성, 이희진 사태 등으로 펀드 출자와 집행에 검사, 감독이 심해져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벤처 투자 업계 전반적으로 투자 선구안이 높아지는 것도 투자가 줄어든 원인 중 하나다. 국내 대형 VC의 한 대표는 “국내 경기가 침체되면서 내수 시장을 타깃으로 시작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해외 시장에서도 성공할만한 상품과 서비스를 내놔야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수에만 집중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우리 기준에 맞는 수익률을 내기 어려워 보다 신중하게 투자를 집행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