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말 많고 탈 많은 '장외주식시장' 논란 속으로

'청담동 주식부자' 사건으로 한바탕 홍역<br>정보 신뢰 문제 해결해야 '복마전' 탈피



최근 ‘청담동 주식부자’의 사기극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는 헐값에 사들인 장외주식을 허위정보를 유포해 비싼 값에 팔아치웠다. 하지만 그가 추천한 장외주식은 거의 대다수가 반토막 났고, 허위정보에 낚인 3,000여 명의 피해자들은 무려 1,000억 원대의 피해를 입었다. 과연 장외주식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사기극의 도구가 되었을까? 논란이 되고 있는 장외주식시장에 대해 살펴보았다.


“상장만 하면 대박이 날 수 있다.”장외주식시장에 처음 발을 내딛는 투자자들은 ‘상장=대박’이라는 말에 현혹된다. 물론 이러한 공식이 성립되는 사례도 여럿 존재한다. 삼성SDS와 카카오, 네이버 등이 장외주식시장에서 소위 ‘대박’을 친 대표적인 기업이다.


모든 투자자가 대박의 꿈을 꾸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현재 장외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기업은 약 1만여개로 추산된다. 이 중 상장에 성공하는 기업은 매년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업공개(IPO) 단계에 돌입조차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기업 존속 여부조차 쉽게 점치기 어렵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대박의 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위험요소도 분명 크지만, 이를 상쇄할 수 있을 만큼 장외주식시장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공식 장외주식시장은 금투협에서 운영하는 ‘K-OTC’다. 사진은 K-OTC의 전신인 국내 첫 공식 장외주식시장 ‘프리보드’의 출범식 현장.현재 공식 장외주식시장은 금투협에서 운영하는 ‘K-OTC’다. 사진은 K-OTC의 전신인 국내 첫 공식 장외주식시장 ‘프리보드’의 출범식 현장.


‘상장만 하면 대박’ 유혹의 치명적 위험
장외주식시장은 쉽게 말해 우리가 흔히 주식을 거래하는 코스피(KOSPI), 코스닥(KOSDAQ)에서 거래할 수 없는 주식이 거래되는 시장을 일컫는다.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주식은 모두 증시에 상장된 기업으로 제한된다. 이 같은 상장주식 외의 주식을 비상장주식이라고 하며, 비상장주식이 거래되는 시장이 바로 장외주식시장이다.

투자자들은 대개 상장이 예정된 소위 ‘우량 기업’의 주식을 장외에서 미리 매입해 선점하는 방식으로 시세차익을 노린다. 특히 장외주식시장의 경우 기존 코스닥, 코스피 시장에 비해 거래의 자율성이 높은 편이다. 또 개인과 개인의 거래로 알음알음 이뤄지기 때문에 조건만 맞는다면 평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매입해 큰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 A씨는 말한다. “비상장주식은 개인 간 거래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정확한 투자수익률 통계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비상장주식이 대박을 칠 경우에는 시중 금융권에서 유통되는 고금리 상품보다 훨씬 높은 투자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점이죠. 더구나 최근 저금리 기조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투자자들이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고수익에 도전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요. 장외주식시장이 활성화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국금융투자협회(이하 금투협)에 따르면 공식 장외주식시장 ‘K-OTC’의 거래대금과 거래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8월 기준 ‘K-OTC’의 하루 장외주식 거래대금은 평균 8억9,000만 원 수준이다. 이는 지난 1월 3억9,000만 원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거래량도 꾸준히 증가해 지난 8월 하루 평균 거래량은 약 165만 주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 역시 지난 1월의 하루 평균 거래량이었던 52만 주보다 3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여기에 사설 장외주식 거래사이트와 브로커, 개인 간 거래 등 비공식 장외주식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규모는 공식 시장인 ‘K-OTC’의 20배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비공식 장외주식시장의 연간 거래규모가 약 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장외주식시장 규모의 성장은 수치로 입증된다. 하지만 꼭 규모가 성장했다고 해서 시장 자체가 잘 여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변수 하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정보의 신뢰’ 문제다.

A씨의 말처럼 장외주식시장은 ‘하이 리스크(High Risk)-하이 리턴(High Return)’이 특징이다.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만큼 위험도 역시 높다. 이유는 단순하다. 장외주식에 대한 정보 유통이 극히 한정된 범위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정보의 진위 여부 역시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A씨는 말한다. “개인투자자들의 경우 장외주식시장에서는 소위 ‘깜깜이 투자’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들은 기업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들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공시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포함한 수많은 금융업계 종사자들도 이와 관련한 정보를 분석해 제공하죠. 하지만 장외주식시장에서 유통되는 종목에 대한 정보는 어느 누구도 제공의 의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개인투자자들은 스스로 K-OTC에서 거래되는 기업을 제외한 수천 개 기업의 재무상태와 투자 현황을 스스로 파악해야 하는 거죠. 이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주식에 해박한 지인들의 입을 통해 정보를 듣거나, 소위 투자전문가로 불리는 일반인 및 불법 브로커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가 취약한 개인투자자들은 이처럼 제대로 된 정보 없이 ‘깜깜이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청담동 주식부자’ 사기사건 같은 경우가 바로 전형적인 ‘깜깜이 투자’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대표적인 사례다. 검찰에 구속된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는 각종 방송 프로그램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고급차와 호화주택을 공개하며 자신의 부를 과시한 뒤, “장외주식시장을 통해 당신도 이 같은 부를 누릴 수 있다”며 일반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그는 헐값에 매입한 장외주식을 “상장만 되면 대박이 날 것”이라며 장외주식 투자자들에게 되팔았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시세차익을 누렸다. 하지만 정작 이 씨가 판매한 장외주식은 이후 상장에 실패했거나, 상장 후에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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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제2의 청담동 주식부자 사태를 막기 위해선 장외주식시장의 투명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눈에 보이는 해결책은 현재 유일한 공식 장외주식시장인 K-OTC의 활성화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과연 이유는 무엇일까?




장외주식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알기 어려운 개인 투자자들은 그야말로 ‘깜깜이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그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하듯 얻는 정보는 결코 신뢰를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장외주식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알기 어려운 개인 투자자들은 그야말로 ‘깜깜이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그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하듯 얻는 정보는 결코 신뢰를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투자 정보 얻기 어려워
표면적 이유는 K-OTC의 운영 과정에서 큰 폭의 적자가 발생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시작한 사업도 적자 행진이 지속된다면 결코 제대로 영위하기는 어렵다. 금투협에 따르면 K-OTC의 연간 운영비는 약 20억 원 수준이다. 하루 평균 10억 원을 넘지 못하는 거래대금에 비춰보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현재 K-OTC에서는 연간 15억 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OTC 활성화를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은 비상장기업들이 K-OTC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비상장기업이 50명 이상에게 공개적으로 주식을 판매하면 K-OTC 거래종목으로 자동 지정된다. 비상장주식을 판매할 때 발생하는 거래물량은 해당 회사의 매출 실적으로 잡힌다. 이럴 경우, 기업은 분기별로 사업보고서나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굳이 스스로 까다로운 ‘의무’를 떠안으려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장외주식 투자자들에게 K-OTC가 전혀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 개인투자자는 K-OTC에서 장외주식을 거래할 경우 양도소득세(대기업 20%, 중소기업 10%)를 부담해야 한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모든 증권은 투자이익이 발생할 경우 이에 따른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코스닥, 코스피 시장의 경우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양도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사설 시장으로 몰리는 대표적인 이유다. 거래세율의 경우 0.5%로, 1% 이상으로 책정된 사설 시장의 평균 세율보다 낮지만 개인투자자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수준이다. 정부는 내년 4월 거래분부터 거래세율을 0.3%로 인하해 공식시장의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장외주식시장에서 정보는 곧 돈이다. 알짜배기 정보는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달콤한 사탕발림의 허위 정보는 투자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과연 정보의 신뢰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A씨는 장외주식의 유통 경로를 우선 살펴봐야 된다고 말한다.

“장외주식은 기본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접근이 어려운 시장입니다. 일부 벤처캐피털(VC)과 관련 기관들만이 창업 기업에 대한 초기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장외주식시장은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밖에 없죠. 초기 기업의 고급 정보를 보유한 VC와 기관들이 매입한 주식은 대부분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장외주식 중개업체들에게 판매됩니다. 통상적으로 적게는 10억 원, 많게는 100억 원 수준으로 대량 거래되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이 이를 구매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죠. 분명한 사실은 실제 가치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이 매겨지고, 이로 인해 소위 거품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일반 개인투자자들은 대다수 장외주식 중개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사설 사이트에서 매겨진 가격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높은 가격에 구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투명한 정보 유통이 시장 활성화에 필수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 역시 장외주식시장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보 접근의 최상단에 위치한 VC의 자정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일부 VC가 ‘벤처생태계 활성화’라는 설립 목적을 잊은 채 다양한 방식을 활용한 배 불리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양한 방식’에는 장외주식시장을 통한 이익 취득 역시 포함돼 있다.

익명을 요구한 VC업계 관계자 B씨는 말한다. “8~9년 전 벤처업계에서 주목받은 기업 하나가 있었습니다. 코스메틱 분야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졌죠. 특히 핵심 사업 포트폴리오가 ‘중국 및 동남아 시장을 타깃으로 한 제품 개발’이었기 때문에 투자가 활발히 이뤄졌습니다. 물론 벤처기업의 특성상 데스밸리(Death Valley·초기 벤처기업이 기술개발과 사업화 단계를 넘어 시장에 안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일컫는 말)를 넘길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은 존재했죠. 하지만 일부 VC를 중심으로 워낙 높은 평가가 이뤄졌던 터라 성장에 대한 의심이 적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이 회사는 데스밸리를 넘기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당 약 5만 원에 장외주식이 거래되기 시작했죠.”

B씨는 문제가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데스밸리를 무사히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업공개(IPO)와 상장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과연 그 기업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B씨가 재차 입을 열었다. “결론적으로 이 기업은 상장에 실패했습니다. 제품 임상 과정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러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장외주식 가격은 최초로 책정된 5만 원에서 12만 원까지 상승했죠. 데스밸리를 넘겼다는 점만 부각되다 보니 벌어진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일부 VC 관계자들은 가격이 정점에 올랐을 때 이 주식을 전량 매각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요. 상장 실패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이 사실상 이러한 정보의 신뢰 문제를 해결할 확실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 공개의 의무가 없는 수많은 비상장기업에게 강제로 의무를 지게 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VC 및 금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투협이 기관, 펀드매니저 등 업계 전문가들만 참여할 수 있는 별도의 장외주식시장 ‘K-OTCⅡ(가칭)’ 출범을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기획이 현실화된다면 전문가들을 통해 보다 정확한 주식가격 책정과 투명한 정보 공유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금융업계 관계자 A씨는 “금투협 내부에서도 이번 청담동 주식부자 사기사건을 계기로 사설 장외주식 시장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며 “전문가 집단을 위한 별도의 시장 개설은 올바른 정보 유통과 사설 시장의 투명성 확보, 그리고 공식 시장인 K-OTC의 활성화에 긍정적인 부분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김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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