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이후 지난 3주 동안 한국 경제는 완전히 멈춰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상적인 경제활동만 이어지고 있을 뿐 국정동력 상실과 중장기적인 정치·경제의 불확실성 가중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은 힘을 잃었고 기업들은 내년 경영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대내외 악재 등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경제심리까지 급속도로 쪼그라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경제 연구부장은 “최순실 게이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쇼크처럼 대내외 악재가 동시다발로 터지면 가장 먼저 경제심리가 빠르게 위축된다”며 “당장 올해는 어떻게 넘기더라도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KDI는 이달 말 내년도 경제전망 수정치를 내놓는다. 최근 악재들을 반영하면 5월 전망(2.7%)보다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라증권은 트럼프 쇼크를 반영해 2%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현재 정부는 3.0%, 한국은행은 2.8%로 내다보고 있다.
◇소비·생산·투자는 이미 한겨울=거시경제지표는 최순실 게이트 이전에도 이미 한겨울이었다. 지난달 31일 통계청이 내놓은 ‘9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생산(-0.8%), 투자(설비 -2.1%, 건설 -4.7%), 소비(-4.5%) 등 3대 지표가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트리플 쇼크’를 보였다. 특히 소비는 5년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나타냈다.
대내외 악재가 쌓여가고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터진 최순실 게이트는 메가톤급 악재다. 정부와 여당의 리더십이 바닥까지 추락하고 경제정책 조율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경제도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임기 말 정책추진 동력을 상실한 정부가 뚜렷한 해법을 내놓기 어렵다는 점에서 앞으로 추가적인 경기부진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 사령탑 보름째 공석=경제 상황이 바람 앞의 등불인데 경제 사령탑은 보름째 사실상 공석이다. 이달 2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됐지만 아직 인사청문회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경제 사령탑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나 정치권은 경제 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새다. 정치권은 지난주 말 서울 광화문광장에 100만명이 모인 촛불집회의 민심을 확인하고도 당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임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는 기재부 안팎에서는 청문회 준비를 사실상 중단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후보자가 내정된 첫 주말에는 업무보고를 받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갔지만 지난주 말에는 현안 보고를 받지 않으면서 나온 얘기다. 정치권의 대통령 2선 후퇴 공방에 밀려 기재부는 아직 인사청문회 요청서조차 제출하지 못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경제 현안을 챙기고는 있다지만 영(令)이 서지 않는다. 당장 기재부는 다음달 말 발표 예정인 ‘2017 경제정책 방향’을 어느 장단에 맞춰 짜야 할지 고민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업무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고 전했다.
◇중장기 과제 엄두도 못 내=최순실 게이트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문제로 직결되면서 국정은 마비된 상태다. 박 대통령은 당장 나흘 앞으로 다가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불참한다. 정부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에 결정된 사안으로 황교안 총리가 대리 참석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각국 정상들이 모이는 회의에서 존재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 회의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 당선 이후 처음 열리는 APEC 회의다. 각국 정상들은 트럼프 이후 판이 새로 짜일 것으로 전망되는 국제통상 질서에 대응하기 위해 협의하고 국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높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선언적인 의미에서라도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과 총리가 참석하는 것은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정부의 중장기 과제들도 줄줄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 주재로 연내 열릴 예정이던 무역투자진흥회의, 저출산·고령화회의 등도 줄줄이 일정이 지연되며 내년 이후로 연기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전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이 한창인데 우리나라는 아직 로드맵도 발표하지 못했다”며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중장기 과제들을 진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종=김정곤·구경우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