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방송·연예

‘추적60분’ 위기의 검찰, 검찰은 최순실 국정농단 미리 알고 있었나?

‘추적60분’ 위기의 검찰, 검찰은 최순실 국정농단 미리 알고 있었나?‘추적60분’ 위기의 검찰, 검찰은 최순실 국정농단 미리 알고 있었나?




16일 방송된 KBS2 ‘추적60분’에서는 ‘최순실 게이트, 위기의 검찰’ 편이 전파를 탔다.


지난 9월 20일, ‘최순실 게이트’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의혹에 실망과 분노를 넘어 국민적 상실감마저 들게 하는 상황.

최순실 씨의 최측근인 고영태 씨의 소환 조사를 시작으로 ‘국정농단’의 주인공 최씨,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관련 인사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늑장대응과 부실수사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검찰이 최순실 씨를 비호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하는데. 결국 지난 12일, 성난 민심은 100만 촛불(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26만 명)로 드러나기에 이른다.

검찰은 왜, ‘최순실 게이트’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가.

■ 검찰의 수수방관, 국민 불신 키웠다

지난 10월 30일 오전, 돌연 귀국을 택한 최순실씨. 국정농단의 핵심 당사자인 최씨에게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린 상태.

하지만 검찰은 최씨를 긴급체포하지 않는다. 중요 사건의 핵심 관련자의 경우, 다른 이들과 말을 맞추거나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 검찰의 수사 관행.

그런데 검찰은 왜 최순실 씨에게 유예 시간을 주었고, 그 시간 동안 최씨는 무엇을 은폐하려 했을까. 취재진은 최씨의 귀국에서 검찰 출두까지, 31시간의 행적을 추적해본다.

지난 9월 29일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강제 모금 의혹과 관련해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최순실 씨 등을 고발한다.

하지만 피고발인 규모만 80명 이상인 이 사건은 특수부가 아닌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되는데. 지난 10월 20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사건에 대한 처벌을 언급하면서 검찰의 수사 상황은 급변한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전경련 사무실 등 9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것.

하지만 최순실 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더블루케이’는 이미 문을 닫았고, 내부 자료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진 상태.

취재 도중 우리는 최씨의 측근 장순호씨가 세운 새로운 회사, 더운트를 찾았다.

더블루케이가 문을 닫은지 한달만에 설립된 이 회사는, 최씨의 구속 직후 황급히 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짐을 옮겼다.

당시 사무실 내에는 의문의 대형 금고 2개가 있었다는데. 과연 금고 속 자료들은 어디로 갔을까.

■ 검찰은 최 씨의 국정농단을 이미 알고 있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검찰은 박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당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다.

관련기사



그런데, 최근 가토씨는 또다른 기사를 통해, 검찰이 조사 당시 ‘최순실과 최태민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고 폭로했다.

검찰이,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같은 해 11월에는 ‘정윤회 게이트’가 터져나왔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에서 작성한, ‘정윤회 동향 문건’이 보도되면서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청와대와 검찰은 국정농단에 대한 진상 규명이 아닌, 문건 유출에만 집중하는데. 문건 내에는, 최씨가 권력서열 1위라는 충격적인 내용도 포함돼있었지만, 검찰은 문건 유출의 경위에만 집중했다.

당시 국정농단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면, 지금과 같은 대혼란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취재를 진행할수록 오래 전부터 최순실 씨가 국정에 개입해왔다는 정황, 그리고 이 과정에 검찰이 깊숙이 관여한 정황이 계속해서 나타나는데.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 사건에서 또 하나의 ‘공동 정범’은 아니었을까.

■ 위기의 검찰, 칼끝은 누구를 향하는가

‘최순실 게이트’를 막지 못한 핵심에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있다.

어릴 적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탄탄대로를 달린 그는 ‘수사 하나만큼은 그를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능한 검사였다.

두 번의 검사장 승진 실패에 사직서를 던지고 변호사가 된 그는, 불과 1년만에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돌아오는데.

‘정윤회 게이트’ 당시 ‘문건 유출’로 프레임을 전환해,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처리하면서 ‘리틀 김기춘’으로 불렸던 우 전 수석. 그 공로로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그리고 2년만에 또다시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 그는 과연 이 내막을 몰랐을까.

“검찰 인사라는 것이 결국은 민정수석실을 1차적으로 통과해야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실제로 인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에 검찰이나 법무부보다도 권력 서열로는 더 위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죠“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 전직 검사

한 사람이 검찰조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위 ‘정치 검찰’이 될 수밖에 없고, 승진과 보직을 중요시하는 검찰 내부 분위기 속, 검찰의 인사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리가 바로 민정수석이다. 황제소환, 황제수사 논란을 불러일으킨 우 전 수석의 당당한 태도는 결국 검찰 내 핵심 요직을 차지한 측근들에게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정윤회 게이트’ 당시 故 김영한 전민정수석의 비망록, 전직 검사 출신 변호사와 국회의원들의 증언을 통해, 검찰과 권력, 그 뿌리 깊은 연결고리를 들여다보고,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정국을 안정시킬 해법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사진=KBS 제공]

전종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