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추위와 함께 서울시 서초구 삼성타운에도 서늘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매년 12월 초 실시되는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앞둔 사장들은 취재진의 질문세례에도 입을 굳게 다물고 지나쳐 버린다. 올해 인사와 조직 개편 폭이 클 것이라는 소문에 일반 직원들마저 뒤숭숭한 분위기다.
올해 삼성은 대규모 인사·조직 쇄신을 단행할 명분이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다. 삼성전자의 하반기 전략 제품인 갤럭시노트7은 직간접 손실액 7조원만 남긴 채 허무하게 단종됐다. 여기에 삼성은 온 나라를 뒤집어놓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도 받는 처지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취임하며 책임경영을 강화한 이재용 부회장은 신성장 동력을 향한 항해의 닻을 올렸다. 삼성전자는 프린팅솔루션 사업부를 휴렛팩커드(HP)에 매각하고 미국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기업 하만을 약 9조4,000억원에 전격 인수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이달 10일 유가증권(코스피)시장에 신규 상장했다.
삼성 안팎에서는 당장 그룹을 진두지휘하는 미래전략실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 계열사 자율경영을 중시하는 이 부회장의 성향을 고려하면 미전실의 위상이 작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지난 2012년부터 그룹을 끌어온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의 교체부터 미전실 조직 축소는 물론 미전실 폐지설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미전실의 한 임원은 “최 부회장은 최근 미전실 폐지는 없다는 언급을 직접 하기도 했다”며 “미전실의 점진적 위상 변화는 있을지라도 올해 과격한 변화가 발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신상필벌을 중시하는 삼성의 조직문화를 고려하면 갤노트7 단종과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변화폭도 클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IT·모바일(IM) 부문과 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삼성전기 등 전자 계열사에서 사장급 임원의 변동 분위기도 감지된다. 삼성전자는 갤노트7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전사 차원의 품질 혁신 작업을 시작한 만큼 이와 관련한 조직·부서를 신설할 수 있다는 전망도 많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삼성전자 대외협력실과 미전실 일부 부서, 제일기획 사무실이 이미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고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등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은 상태다.
한편에선 신사업 추진의 주역들이 올해도 대거 승진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지난해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가 사장으로 승진한 것처럼 전장과 바이오·시스템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임원들이 발탁되고 관련 조직도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그룹 전반적으로 임원은 줄어드는 형편이지만 바이오처럼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사업은 성장세에 발맞춰 임원 수를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거취도 관심사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은 올해로 각각 재임 3, 4년 차다. 임원들의 임기가 통상 3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부 금융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바꿀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지난해 금융 계열사 사장들은 모두 유임됐다.
계열사의 전반적인 부진 속에 삼성은 지난 2012년 말부터 승진 임원 수를 계속 줄여왔다. 올해도 이 같은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재계는 전망하고 있다. 특히 올해 임원인사와 조직개편 내용은 삼성의 향후 사업·지배구조 재편 방향과도 맞물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비주력 사업을 분사·매각 형태로 꾸준히 정리하고 있고 일부 금융 계열사를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