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우리나라 지도의 국외 반출을 요청하면서도 안보 민감정보를 가리는 조건은 못 받겠다고 했습니다. 국내 투자나 고용 확대와 같은 인센티브 약속도 없었습니다. 실리가 별로 없는데 허용해줄 이유가 없죠.”
정부가 18일 구글의 한국 정밀지도 데이터(5,000대1) 해외 서버 이전·사용을 불허하기로 결정한 직후 한 정부 관계자가 서울경제신문에 건넨 이야기다. 정부가 구글의 반출 신청 후 6개월 동안 장고를 거듭하며 조건부 승인 가능성도 모색했지만 구글은 막판까지 양보 없이 배짱만 부렸다는 것이다. 국가안보 우려뿐 아니라 경제적인 부분을 봐도 한국이 얻을 실익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구글맵, 안보 우려 해소 못해=국토교통부·국방부·국가정보원 등은 구글에 지도 반출의 전제조건으로 미국 등 외국판 구글 지도(구글맵)의 위성사진 서비스에서 군부대 등을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이런 민감시설은 지우거나 흐리게 처리(블러 처리)하거나 해상도를 대폭 낮춰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구글은 외국판 구글맵에서는 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구글 측은 “한국 정부의 요구는 재량권을 넘어서는 것이고 서비스 품질도 떨어지게 된다”며 “위성사진은 러시아·유럽 등 각국에서 이미 수많은 데이터가 유통되고 있어 구글맵만 고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러시아 ‘얀덱스’ 지도를 활용해 청와대는 물론 군 내 골프장 위치까지 들여다보고 있어 안보 논리가 무색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무조정실 등 전향적인 검토를 주장하는 부처도 만만치 않았지만 외국판 구글맵의 위성사진에다 반출된 지도를 겹치면 국외 적대세력이 정밀타격이나 폭탄 테러 등을 계획할 때 쉽게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지는 못했다.
◇경제적 실익 부족 논란도=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구글맵에 빗장을 열어주면 네이버·카카오 등은 방한 외국인들에게 마케팅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며 “알리페이(중국 알리바바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에 문을 열어줬더니 방한 중국 관광객들이 알리페이로 장을 보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는 “정부가 지도 반출 허용을 내렸다면 우리나라의 많은 정보통신기술(ICT)들이 구글에 한층 종속될 위기를 맞게 됐을 것”이라면서 “특히 구글의 빅데이터가 우리나라 지도 데이터와 연계된다면 큰 위협이 됐을 것”이라고 안도했다. 최병남 국토지리정보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는 앞으로 자율주행차나 드론 등 신산업 육성을 위해 정밀지도 인프라를 계속 확대 구축하고 공간정보 관련 연구개발(R&D)도 강화할 계획”이라며 “네이버 등 국내 업체가 다국어 지도 서비스를 개시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외국 관광객의 편의성 제고는 우리 기업들이 외국인 전용 지도 서비스 등을 확충하면 풀리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콘텐츠 전문가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편리한 지도제작과 애플리케이션 업계 활성화 등의 효과도 기대돼왔는데 자칫 한국의 ICT 산업이 폐쇄적이라는 신호를 줄 수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통상마찰 등 후폭풍 만만치 않아=하지만 한미 간 통상마찰 우려가 제기되고 국내 관광과 앱스타트업 업계에 부정적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집권 이후 통상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를 지도국외반출협의체에서 피력했다. 최 원장은 “구글이 재차 반출을 요청해도 이에 대한 제한을 둘 근거가 없다”고 전제한 뒤 “통상마찰 문제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글 재신청해도 평행선 달릴 듯=구글이 정부가 요구한 지적에 관해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당분간 재신청할 가능성은 낮지만 신청하더라도 한국 정부와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블러·삭제·저해상도 처리 등 한국 정부의 요구를 어느 정도라도 수용할 의향이 있어야 허가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글코리아는 보도자료를 내 “구글도 안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번 결정에 대해 유감스럽다”며 “앞으로 관련 법규 내에서 가능한 지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서버 호스팅 서비스를 통해 제한적 기능의 한국판 구글맵을 계속 운영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국회 관계자는 “내년 12월 대선이 있는데 국민감정에 반하는 결단을 정부가 내리기는 어렵다”며 “구글이 한국에서 세금을 제대로 내고 군사기밀을 가려주는 성의를 보여야 타협의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민병권·조양준·김창영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