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의 한 벤처기업이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농지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농부들이 더 스마트하게 비즈니스 결정을 내리도록 돕고 있다.
농부라고 하면, 밤낮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대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경작지에서 피땀 흘려 일하면서 IT와는 거리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농업이야말로 가장 데이터 중심적이고 효율성을 중요시 하는 직군 중 하나다. 한 나라의 식량을 책임지는 대부분의 농부들은 최신 비즈니스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수세기 동안 그런 자세를 취해왔다(따지고 보면 농업은 1만 2,000년 전에 등장한 직업이다). 하지만 그들이 일하는 방식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변하기 시작했다. 정보 공유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의 농부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보를 교환했다(물론 아직도 그렇다). 하지만 오늘날의 농부들은 필요할 때마다 종합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다른 농부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존 브라운 John Brown이 건초작업을 늦게 시작했지만 다 끝냈다거나, 제인 스미스 Jane Smith가 가격이 가장 싼 순무 씨앗을 찾았다는 소식들까지 알 수 있다.
캘리포니아 샌 카를로스 San Carlos에는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 Farmers Business Network라는 신생기업이 있다. 벤처캐피털 회사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 바이어스 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의 전 파트너 아몰 데슈판데 Amol Deshpande와 구글 에너지혁신 프로그램의 책임자 출신 찰스 배런 Charles Baron이 2013년 공동 설립한 회사다
이 회사는 미국 내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농경지와 수천 명의 농부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농부들에게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수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 플랫폼 아마존 웹서비스 Amazon Web Services을 기반으로 구축한 이 데이터의 보고(寶庫)는 종자와 비료 가격, 경작지 규모, 작물 수량과 같은 방대한 정보들을 저장하고 불러오고 처리를 하고 있다. 농부들은 이 시스템을 활용해 자신과 다른 농부들의 농업활동을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경쟁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오히려 농부들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다.
배런은 “이처럼 대규모의 데이터 활용은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2,500명 이상의 농부와 800만 에이커 규모의 농지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이 시스템은 농부들이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그 동안은 종자와 화학제, 비료, 살균제, 해충제, 그리고 그 밖의 농업에 투입되는 생산요소들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지 않았다. 배런은 “몬산토 Monsanto나 듀폰 DuPont 같은 거대 농업기업들이 지역마다 제품 가격을 다르게 설정했기 때문에, 농부들이 휘둘리기 쉬웠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데이비스 Davis 캠퍼스의 농경제학 교수 대니얼 섬너 Daniel Sumner 교수는 “옥수수 종자 가격이 아마 에탄올 공장 근처에서 더 비쌀 것”이라고 설명했다(옥수수는 에탄올의 주 원료다). 하지만 가격정보 공유는 농부들의 구매 패턴을 바꿔놓고 있다. 섬너 교수는 “이 시스템은 농부들이 잘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이다. 정보를 공유하는 농부들이 더 많아질수록, 데이터 자원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샌디에이고 주 체스터 Chester에서 옥수수와 대두를 재배하는 농부 존 벙커스 Jon Bunkers(40)는 “농화학 제품 구매는 (종자 구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시스템을 이용하기 전까진 이름 있는 비싼 화학제품의 저렴한 복제품(generic)을 구하기가 다소 힘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벙커스는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 시스템은 딱히 복제품이 아니어도 저렴한 제품들을 너무나 잘 찾아준다”고 말했다.
농부들의 구매력을 높여주는 건 비단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만이 아니다. 오늘날 많은 농부들은 농업 협동조직을 통해 필요한 제품들을 구매한다. 이 조직은 소규모 자영농민들을 모아 더 저렴한 가격에 공동 구매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하지만 섬너 교수는 “이 협동조직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면, 농부들은 조직의 비효율성으로 커다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며 “당초 지불해야 할 가격보다 훨씬 더 비싸게 구매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벙커스도 처음에는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농업 신기술을 판매하려는 수많은 영업직원들의 공략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곧 농자재를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더 큰 문제가 남아있다. 미국 농업협회(American Farm Bureau Federation)의 로비스트 메리 케이 대처 Mary Kay Thatcher에 따르면, 어떤 농부들은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 같은 ‘농업기술’ 회사와 함께 사업하기를 꺼리고 있다. 자신들로부터 얻은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될지 알지도 못하고, 믿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런은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속해 있는 농부들은 각자가 자신들만의 고유 정보를 갖게 된다”며 “수집된 정보는 공유되기 전에 익명화 처리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부들은 원한다면 언제든 계정을 없앨 수 있고, 본인의 정보도 다시 가져갈 수 있다. 몬산토와 듀폰도 농부들에게 비슷한 혜택을 주는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몬산토 대변인은 “자회사인 클라이미트(Climate Corp.)를 통해 수집된 정보는 농부 자신들의 소유가 된다”고 말했다(듀폰은 이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그러나 대처는 회사들의 안심시키기 위한 말로는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모든 회사들은 정보의 주인이 농부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 정보를 외부 회사에 넘기면, 농부들은 더 이상 그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갖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케이크에서 설탕을 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비유했다.
여기선 M&A 같은 다른 문제들도 빼놓을 수 없다. 급성장하는 농업기술 분야에선 신생기업이 다른 기업에 인수 합병되는 일이 흔하게 벌어진다. 몬산토는 전 구글 직원 두 명이 2013년 창업한 클라이미트를 10억 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도 몬산토 같은 경쟁기업에 팔리지 말란 법이 없다.
배런은 “그럴 일은 없다”고 딱 잘라 말하며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는 농부들로부터 얻은 신뢰를 해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언컨대 몬산토가 농부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 우리 회사를 인수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는 독립 경영에 필요한 투자금-현재까지 4,800만 달러를 조성했다-을 어려움 없이 유치했다. 에이커 벤처 파트너스 Acre Venture Partners의 개러스 애스텐 Gareth Asten은 회사가 최근 2,000만 달러를 유치하는데 일조한 바 있다. 그는 “농부들의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정보를 활용하고 있는 파머스 비즈니스 네트워크는 엄청난 성장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신생기업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애스텐은 “나는 데이터의 힘을 믿는다. 고품질의 정보는 과거에 힘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강력한 힘을 제공해준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JONATHAN VAN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