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인 남성들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스스로 뒤처지고 소외돼 있다는 자괴감이다.
백인 남성의 이런 가정은 단순히 근거 없는 느낌은 아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실제로 뒤처져 있고 방치돼 있다. 이런 느낌은 여러 데이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현 경제 시스템은 국민 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다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시스템은 실패한 것이라고 여러 차례 주장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난 30년간 미 경제 시스템은 소수의 부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하위 80%의 저소득층에게는 불리한 방향으로 형성됐다. 그래서 트럼프의 이번 승리는 ‘아이러니’하다. 트럼프가 이끌게 된 당이 바로 극단적 세계화를 추구해 빈부격차를 확대한 공화당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제일의 과제로 내세운 일자리 확대 공약을 실현할 방법은 거의 없다. 우선 중국과 인도가 글로벌 경제로 통합된 상황에서 미국에서 제조업을 활성화시키기는 어렵다. 중국과 인도가 넘볼 수 없는 첨단 제조업은 일자리 자체가 많지 않다. 기술 진보도 일자리를 줄이는 요인이다. 트럼프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전통 제조업 일자리는 1950년대까지는 선호되는 고임금 직종이었으나 지금은 저임금 직종으로 전환돼 유권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트럼프가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규칙을 다시 써야 한다. 자신과 같은 부자들을 위한 규칙이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을 위한 규칙이 필요하다.
가장 포괄적인 접근은 미국의 소득분배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미국의 소득분배는 선진국 가운데 최악이다. 트럼프가 최저임금을 올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노동자의 단체 교섭권 강화, 최고경영자 보수 규제 등 필수적인 방안에 트럼프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지난 4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는 미국의 경제력 집중 문제를 조명하는 짧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경제력 집중은 경쟁 감소와 상품 가격 인상, 실질 임금 하락을 의미한다. 미국은 우선적으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퇴행적 조세 시스템도 개혁 대상이다. 부유층이 주로 혜택을 보는 자본차익과 배당소득에 대한 특혜를 제거해야 한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 확대다. 투자는 장기적이고 견고한 성장의 기반이 된다. 특히 사회간접자본과 연구개발 투자가 중요하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은 민간투자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또 중소형 기업의 금융시장 접근도를 높여 개인투자를 증진해야 한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기업에 대한 법인세도 낮춰야 한다. 평범한 미국인의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구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을 신뢰하기는 어렵다. 공화당이 추구하는 세제개혁은 부자들을 위한 것이다.
트럼프는 기회의 평등을 높이는데도 실패할 것이다. 기회의 평등은 유치원 교육을 강화하고 공공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 본질이다. 만일 미국이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면 기회의 불평등은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부의 평등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주택과 의료, 노년을 위한 퇴직수당, 재교육 환경 개선 등이 필요하다. 트럼프의 공약은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을 건강보험 없는 상태로 전락시킬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대 이후 미국의 중산층은 붕괴됐고 이익 분배는 왜곡됐다. 21세기의 미국은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역할 증대와 문화적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인터넷의 부상 등 레이건이 집권한 1980년대와는 다르다. 트럼프가 뒤쳐진 미국인을 돕기 원한다면 과거의 이데올로기 전쟁을 뛰어넘어야 한다.
앞서 내가 스케치한 아젠다는 경제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역동성과 개방성, 그리고 미국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한 약속을 충족시키는 사회에 관한 것이다. 이 중 일부분은 트럼프 캠페인의 공약과 일치하지만 대부분은 상충된다. 트럼프의 새 규칙은 현 상황을 악화시키고 미국인들에게서 꿈을 빼앗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