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서경이 만난 사람] 추무진 의사협회장 "대형병원 쏠림 방치땐 고령화 맞물려 의료전반·경제까지 피해"

의료비 늘어 환자 부담·건보 재정 악화·동네의원 도산 등 불보듯

의사 비위행위 뿌리뽑기 위해서는 협회차원 직접조사 시스템 중요

국내 개인 건강정보 데이터 잘 축적...IT의료융합시대 선제대처 가능



대담=최형욱 바이오헬스부장 choihuk@sedaily.com

“통계적으로 일반 환자들의 질병은 1차 의료기관, 즉 동네의원에서 70%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동네의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가벼운 병에도 상급병원을 찾기 때문에 건강보험상 진료 수가 수입은 상급병원이 1차 의료기관의 두 배에 이릅니다. 이런 비효율적인 진료 체계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큽니다.”


20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추무진(사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이른바 ‘대형병원 쏠림현상’으로 대표되는 진료체계 왜곡이 국내 의료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며 이같이 말했다. 말투는 차분했지만 진료체계 왜곡이 우리 국민 생활의 질과 경제 전체에 얼마나 악영향을 주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추 회장은 “상급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동네의원보다 시간과 돈이 훨씬 많이 드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니냐”며 “결국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불필요하게 국민 의료 비용을 늘리고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고령화가 심화하면 의료비 증가로 인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자연히 소규모 의원의 경제난으로 이어진다. 추 회장은 “대형병원 쏠림이 10년 넘게 계속되면서 지역 동네의원이 많이 무너졌다”며 “환자들 입장에서는 접근성 좋은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가 줄어들고 문 닫는 의원이 늘면서 경제 전체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환자복지·국가재정·경제성장 등 모든 측면에서 진료체계 왜곡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라는 것. 실제로 동네의원은 매년 3,000곳 가까이 폐업하고 있다.

추 회장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동네의원과 상급병원 간 의뢰-회송 체계 개선’을 제시했다. 진료 의료-회송 체계는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는 동네의원에서 우선 제공하되 여기서 해결할 수 없는 질환은 상급병원에 ‘의뢰’해 보내고 상급병원에서도 경증 환자는 동네의원으로 ‘회송’하도록 하는 제도다. ‘경증 환자는 동네병원에서, 중증 환자는 상급병원에서’라는 원칙을 확립하자는 취지다.

의사협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이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자며 지난해 개선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각계 전문가와 정부도 이에 호응해 올해 5월부터 의뢰-회송 온라인 시스템 구축, 의뢰-회송 시 의사에게 1만~4만원 수가 지급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시범사업에는 전국 13개 상급종합병원과 4,500개 병·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송은석기자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송은석기자


추 회장은 “의사와 환자 모두 시범 사업에 대해 아직 잘 몰라 참여율이 저조하다고 들었다”며 “의사협회 차원에서 제도 필요성에 대해 의사와 국민 모두를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홍보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동네의원에서 상급병원으로 의뢰할 경우 의사에게 주어지는 수가가 회송할 때의 4분의1 수준에 그치는 점, 3차 의료기관에서 기본적인 진료 수가가 낮다 보니 경증 질환 진료까지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 등도 의뢰-회송 제도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라며 “이런 문제들도 함께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장기적으로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의뢰, 회송을 의무화하고 이를 거부하는 환자는 건강보험 지원 없이 자기 부담으로 진료받게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이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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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회장은 인터뷰 내내 “의사협회가 의사 회원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을 위한 의료정책을 펴는 것, 국민에게 신뢰받는 단체가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료체계 왜곡 문제 해결을 가장 시급한 임무로 꼽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추 회장은 같은 맥락에서 최근 몇 년간 잇따른 의사들의 중대한 비위행위에 대해서도 엄중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수면내시경 시술 중 성범죄, 대리수술 중 사망사건, 1회용 주사기 재사용, 고질적인 의약품 리베이트 등이 터져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는 “비위를 저지른 건 일부이지만 이로 인해 의료 사회 전체의 신뢰가 실추돼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추 회장은 의사 비위행위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의사협회가 의사의 잘못을 직접 조사해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의사협회는 변호사협회 등과 달리 회원을 직접 조사할 권리가 없다. 추 회장은 그런 점에서 올해 도입되는 ‘전문가 평가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 평가제는 지역 의료 현장을 잘 아는 의사 위주로 평가단을 꾸려 의료인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협회에서 직접 조사해 처분 수준을 결정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이 제도 시범사업이 21일부터 광주·울산·경기 등 3개 지역에서 시작된다.

추 회장은 “전문가 평가제는 의사의 비윤리적 행위에 관해 좀 더 미리 대응할 수 있고 전문적인 사안에 대해 정확한 판단과 처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계 내부에서는 ‘동료들끼리 감시를 조장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전문성을 가진 의사가 문제를 판단하면 선의의 피해자를 줄일 수 있다”며 “무엇보다 환자와 국민들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전문가 평가제는 꼭 필요한 제도”라고 역설했다.

첨단 정보기술(IT)과 헬스케어 산업의 융합이 몰고 올 의료계의 변화에 대해서 물어봤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질병 진단, 치료제 개발, 건강 관리 등과 접목하려는 시도를 적극 펼치고 있다.

추 회장은 “얼마 전에 미국의 한 대학 병원을 방문했는데 해부학 실습을 실제 사람의 몸이 아닌 3D 영상만으로 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의료 과학기술이 빨리 발전하고 있구나’ 하고 놀랐다”고 전했다. 그는 “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개인마다 질병을 사전에 예견하고 인공지능이 건강 관리·치료 방법을 제시하는 시대가 머지않은 시간 안에 올 것”이라며 “우리 의료계도 이에 대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 회장은 “우리나라는 단일 국가건강보험 체계로 어느 나라보다 개인의 건강 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잘 축적돼 있다”며 “이런 장점을 잘 활용하면 IT 의료 융합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리=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사진=송은석 기자

He is...

△1960년 서울 △1986년 서울대 의학과 △1992년 서울대 의학과 석사, 이비인후과 전문의 취득 △1995년 서울대 의학과 박사 △2001년 순천향의과대학 교수 △2012년 용인시의사회 회장 △2013년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2014년 대한의사협회 38대 회장 △2015년 대한의사협회 39회 회장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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