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오명 전 부총리 "고위공직자, 윗선 보지 말고 아랫사람 존경 받아야"

'역대 4개 정권서 6번 장·차관 역임'

임명권자·외부 압력에 굴복 않고

옳다고 여긴 일 끝까지 추진해야

부하들도 관료 믿고 따를 수 있어

바이오·신소재 등 유망산업

IT가 바탕…집중적 투자 필요





역대 네 번의 정권에서 장차관직을 무려 여섯 번이나 지낸 오명(76·사진)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은 ‘직업이 장관’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가장 큰 비결로 관운을 꼽는다. 그러나 장차관직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는 운보다 책임의 리더십이 더 중요한 덕목임을 강조한다. 부처 공무원들이 자신의 보스를 믿고 일하게 하는 이른바 ‘위대한 리더십(great boss)’이다.


오 전 부총리는 최근 경기 광명 이원익오리서원에서 열린 ‘실사구시 리더십’ 강연에서 “고위 공직자는 임명권자인 윗선을 보지 말고 아랫사람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며 “아래로부터의 평가가 곧 역사의 평가”라고 말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방조하고 자초한 일부 관료들의 독직과 무책임을 지적하는 시각과 관련해 오 전 부총리는 보스의 역할은 단호함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윗선이 뭐라 하든 관료가 옳다고 결정한 사안은 끝까지 밀고 외부의 간섭과 압력은 몸을 던져 막아야 부하들이 믿고 따라온다”며 “장차관들은 진정한 보스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주립대 공학 박사이며 엔지니어 출신인 오 전 부총리는 한국 정보통신산업의 토대를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지난 1980년대 5공화국 시절 체신부 차관으로 일할 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를 출범시키고 행정 전산망 구축, 전전자교환기(TDX)와 반도체 4D램 개발 등을 주도했다. TDX 개발은 그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전화통화를 자동연결해주는 외국 TDX가 워낙 고가여서 개발이 시급했는데 당시 오 차관은 부처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문학적 액수인 240억원을 연구개발비로 끌어왔다. 최순달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소장 등에게 만약 TDX 개발에 실패하면 “역사 앞에 죄인이 될 것을 각오하라”며 이른바 ‘TDX 혈서’라 불리는 서약서를 받았다는 일화는 아직도 정보산업계에서 회자된다.

관련기사



그는 “당시 20년 후를 대비해 ‘2000년 정보화 사회가 곧 복지 사회’라는 개념을 세우고 다른 부처에도 알리는 데 힘썼다”며 “정보기술(IT)이 미래 한국을 이끌 것이라는 철학이 뚜렷했던 시기”라고 말했다.

2006년 초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직을 끝으로 행정부를 떠난 그에게는 여전히 ‘소프트웨어 10만 양병’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는 “일각에서 이제 IT 시대가 지났다고 주장하고 지난 이명박 정부는 정보통신부까지 없앴는데 이는 짧은 생각”이라며 “향후 바이오(BT)·신소재(NT) 산업 등 유망 산업 분야도 IT가 바탕이 될 것인 만큼 앞으로도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야기된 국가 권력체계에 대한 문제 인식은 이미 정보혁명이 일어났을 때 불거졌어야 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그는 “국정농단 사태로 현재의 선거체계, 권력체계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며 “정보화 사회에서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대의제 개선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오 전 부총리는 인공지능(AI) 알파고 출현 당시 인간이 졌다는 사실보다 구글이 알파고 제작사인 딥마인드를 7,000억원에 인수했다는 점에 더 충격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IT 비즈니스 생태계가 제대로 만들어지려면 선구안을 가진 대기업이 나타나야 하고 이런 투자가 가능하도록 산업계 풍토를 닦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며 “윗선 눈치를 보며 공무원들을 쥐어짜기보다 외부 간섭을 막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보스가 필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박현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