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하성용 KAI 사장 "38조 美 항공기 수주전…국내 정치 불안으로 불투명"

가격경쟁·기술·경영상황으로

밀린다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현 시국 때문에 계약 못 따내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

하성용 한국항공우주(KAI) 사장하성용 한국항공우주(KAI) 사장




“항공산업은 정부를 믿기에 시간이 좀 늦은 것 같습니다. 내년 6월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38조원 규모의 미국 고등훈련기 수주전이 국내 정치 불안으로 불투명해져 벌써부터 한숨이 나옵니다.”


‘조건부 사직서’를 제출한 하성용(사진) 한국항공우주(KAI) 사장은 2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처럼 털어놓았다. 하 사장이 사활을 걸고 있는 미국 공군 고등훈련기(Advanced Pilot Training) 교체 사업은 약 1,000대, 시장규모 38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쳐진다. 그는 지난 7월 이사회를 통해 사업 수주를 하지 못하면 사장직을 내놓겠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KAI의 명운이 걸려 있는 대형 프로젝트에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우리 정부가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특성상 현 시국은 수주전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 사장은 “내년 6월에 본격적인 협상이 진행되는데 그때가 되면 우리나라는 대선 정국이라 벌써 걱정이 앞선다”면서 “가격경쟁력·기술력·경영상황 등에서 KAI가 밀린다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우리 경쟁력 밖에서 벌어진 일들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APT 사업에 KAI는 미국 록히드마틴과 함께 공동 입찰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미국 보잉과 스웨덴 사브 컨소시엄, 미국 노스롭그루먼, 영국 BAE 등 총 4곳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을 후원한 록히드마틴과 손을 잡은 KAI에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호재다. 반면 가장 큰 경쟁상대로 꼽히는 보잉은 그동안 민주당을 후원해왔다.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꾸린 KAI는 사업의 약 70%를 담당한다. KAI가 각종 부품을 공급하고 록히드마틴이 이를 조립하는 형태다. 하 사장은 “트럼프 당선 이후 KAI의 미국 내 입지는 나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정치 상황을 비롯해 미국과의 관계가 많이 무너진 것이 변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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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국내 방위산업체들은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최씨가 한국형전투기(KF-X) 사업 등에 개입했다는 얘기가 돌면서 일부 업체는 주가가 최대 30%까지 빠졌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즉각 부인했지만 업계에서는 관련 루머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주전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도 상당히 떨어진 상태다.

항공산업에서 대기업들이 발을 빼고 있는 것도 악재로 꼽힌다. 이날 현대차는 보유하고 있던 KAI 지분 전량을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로 처분했다. 하 사장은 삼성과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들이 항공산업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삼성하고 현대차는 과거 1970년대부터 항공산업을 시작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항공산업에 조기 싫증을 느낀 것”이라면서 “지금 자동차 산업이 굉장히 어려운데 현대차가 항공산업을 이어갔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하 사장은 “정부가 향후 40년을 내다보고 항공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동조선해양의 대표를 지낸 그는 “조선 산업은 향후 5~10년간 희망이 없다”며 “자동차 산업도 기울고 있고 스마트폰 등 전자도 위기를 맞았으며 정유화학 부문도 중국의 거센 위협을 받는 산업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며 “항공산업이 미래를 위한 몇 안 되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국산 최초 경공격기 ‘FA-50’에 대한 수출 협상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아프리카까지도 얘기가 되고 있다”면서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KF-X 사업도 잘 가고 있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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