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킹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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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대통령)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의 ‘킹메이커’는 언론 용어다. 정당 내 일정 지분을 갖고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이나 대선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력 정치인 내지 막후 실력자로 받아들여진다. 정치학자들은 대체로 현대 한국 정치 특유의 현상으로 보고 있으며 킹메이커의 출현 배경을 고질적인 지역 구도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마치 봉건영주처럼 이 지역에서 표를 얻고 싶으면 ‘나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식의 부정적인 뉘앙스가 짙다.


킹메이커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허주(虛舟) 김윤환이다. 빈 배를 뜻하는 그의 호가 들어맞기라도 하듯 그는 1992년, 1997년 두 차례의 대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1992년 대선에서 그는 3당 합의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에서 ‘김영삼(YS) 대세론’을 펴 민정계 세력을 YS 지지 쪽으로 이끈다. 대선후보 확정 1주일 전에는 마음을 정하지 못한 고교 동창인 노태우 대통령을 세 번이나 만나 YS의 후보 결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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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는 1997년 대선정국에서 다시 현직 대통령인 YS에 맞서 ‘나라를 위한 모임’을 결성해 이회창 총재를 후보로 만들었으나 대선에서 승리하지는 못한다. 이후 이회창이 당내 개혁의 일환으로 허주 등의 중진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켰고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갈라선다. 2000년 총선에서 민주국민당을 창당해 구미에서 출마하나 낙선한다. 이후에도 이회창의 당선을 막기 위한 ‘영남 후보론’을 계속 내세웠지만 2002년 결과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돼 이를 두고 허주가 사실상 킹메이커로의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4일 “친문재인·친박근혜 패권주의를 제외한 어느 세력과도 손잡을 수 있고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며 킹메이커를 자임했다. 허주가 2003년 신장암으로 별세한 지 13년 만에 다시 듣는 킹메이커 역할론이어서 지금 시대에 맞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김 전 대표만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국정 공백이 한 달씩이나 지속되는데 뾰족한 수습책이나 대안도 내놓지 못하면서 ‘주인공 의식’에만 빠져 있는 다른 주자에 비하면 그나마 순수해 보이기도 한다. /온종훈 논설위원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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