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출신의 게릴라로 혁명을 통해 집권한 1959년 이래 2006년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정권을 넘길 때까지 카스트로 전 의장은 사회주의 맹방인 옛 소련 등의 지원을 업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과 당당히 어깨를 견주고 도전했다.
카스트로와 쿠바 국민은 반세기 넘게 이어진 미국의 경제 봉쇄 조처로 경제적 궁핍을 면치 못했지만 의연하게 맞섰다.
이런 저력은 미국과 53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한 쿠바가 미국 문화에 삽시간에 빨려 들어가듯 흡수되진 않으리라는 전망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카스트로는 또 제3세계 국가를 규합해 세계 패권에 맞서는 일에도 앞장섰다.
카스트로는 아바나의 혁명광장 내무부, 통신부 건물에 간판을 세워 먼저 세상을 뜬 혁명 동지 체 게바라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를 영원히 기렸다.
체 게바라의 얼굴 밑에는 ‘영원한 승리의 그 날까지’가, 시엔푸에고스의 얼굴 밑에는 ‘잘하고 있어, 피델’이라는 글이 각각 적혔다./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다음은 카스트로의 생을 정리한 연보.
▲1926년 8월 13일 쿠바 동부 비란의 ‘마나카스’ 농장에서 스페인 갈리시아 출신 아버지 앙헬 카스트로와 어머니 리나 루스 사이에 출생.
▲1930년 비란의 학교에서 수업을 받기 시작.
▲1945년 9월 4일 쿠바 아바나의 아바나대학 법대에 입학. 5년 뒤인 1950년 대학 졸업 후 변호사 자격 취득.
▲1947년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라파엘 트루히요 대통령 독재에 저항하는 투쟁에 참가.
▲1948년 10월 12일 미르타 디아스 발라르트와 결혼.
▲1953년 7월 26일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해 반란군 이끌고 산티아고 데 쿠바의 ‘몬카다 병영’ 습격했으나 실패. 산으로 도망쳤으나 8월 1일 체포. 10월 16일 재판에서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는 자가 변론. 징역 15년형 선고.
▲1955년 5월 15일 동생 라울 카스트로와 함께 특별 사면. 7월 망명지 멕시코에서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와 첫 만남. 쿠바 습격 지원 요청차 미국 방문.
▲1956년 11월 25일 동생 라울, 체 게바라 등 총 82명으로 게릴라 원정대 꾸려 요트 그란마 호 타고 쿠바로 출발, 12월 2일 쿠바 도착.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에서 게릴라전 개시.
▲1957년 1월 7일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처음으로 승리. 그해 2월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와 첫 인터뷰서 게릴라의 실존과 쿠바 내전 소식 외신에 전파.
▲1959년 1월 1일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도주. 카스트로는 1월 8일 아바나 입성해 2월 16일 혁명정부 총리에 취임.
▲1960년 쿠바 내 미국 정유회사, 제당 공장, 전기회사, 전화회사 등 국유화.
▲1961년 1월 3일 미국, 쿠바와 외교관계 단절하고 대사관 폐쇄.
▲1961년 4월 17일 카스트로 “쿠바는 사회주의국가” 선언.
▲1961년 4월19일 미국의 사주를 받은 탈출 쿠바인들의 피그스만 침투 실패.
▲1962년 2월 7일 미국 대(對) 쿠바 경제 전면 금수조처 발동.
▲1962년 10월 구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에 따른 미국과의 갈등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 촉발. 핵전쟁 위기 도래. 구소련 미사일 기지 철거하고 미국은 쿠바 해상 봉쇄 해제로 극적 타협.
▲1965년 10월 3일 쿠바 공산당 창당. 카스트로는 공산당 제1서기로 선출.
▲1967년 10월 9일 볼리비아에서 체 게바라 사망.
▲1971∼1980년 카스트로, 칠레, 파나마, 니카라과 방문해 좌파 정부 지원.
▲1975년 카스트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지원 반군에 맞서 싸우는 앙골라 좌파 정부 지원 위해 병력 수천 명 파병.
▲1976년 2월 15일 쿠바 사회주의 헌법이 국민투표로 승인. 카스트로 그해 12월 실질적인 쿠바의 대통령인 국가평의회 의장에 취임.
▲1977년 9월 1일 지미 카터 대통령의 미국과 쿠바가 상대국 수도에 권익사무소 개설.
▲1980년 달리아 소토 델 발레와 재혼. 그해 여름 마리엘 항구에서 쿠바 국민의 미국 망명 승인. ‘마리엘 엑소더스’로 12만5천 명 쿠바 탈출.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 붕괴.
▲1991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쿠바 주둔 구소련군 7천 명 철수. 소련의 쿠바 원조 중단.
▲1993년 8월 14일 카스트로 정부, 미국 달러 사용·소규모 사기업 운영·관광 승인 등 제한적 경제개방조처 실시.
▲1994년 8월 5일 아바나 주민 수백 명, 혁명 후 최대 반(反) 카스트로 시위. 그해 8∼9월 보트 타고 쿠바 국민 3만5천 명 이상 쿠바 탈출. 쿠바, 미국과 해마다 쿠바 국민 2만 명 미국 합법 입국할 수 있도록 비자 협상 추진.
▲1994년 10월 1일 식료품 부족 문제 해결 위해 쿠바에 ‘개인 농민 시장’ 조성.
▲1996∼1997년 미국, 쿠바 민주 정부 수립을 전제로 경제 봉쇄 강화하는 헬름-버튼 법안 발효.
▲1998년 1월 21∼25일 카스트로, 쿠바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회동.
▲2000년 9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악수. 10월 30일 쿠바와 베네수엘라 간 의료진-원유 교환 협정 체결.
▲2001년 6월 23일 카스트로 군중집회서 2시간 연설 후 일사병 증세로 가벼운 졸도.
▲2002년 6월 12일 점증하는 미국 압력과 쿠바 내 반대세력에 맞서 사회주의 체제 강화 위해 카스트로 100만 명 행진 진두지휘.
▲2003년 3월 18일 카스트로 반체제인사 강력 탄압. 언론인과 민주인사 등 75명 구속해 국제 사회 비난 직면.
▲2004년 10월 20일 쿠바 산타클라라 연설 후 넘어져서 왼쪽 무릎 골절상.
▲2006년 7월 31일 장 출혈 응급 수술 후 권력을 동생 라울에게 이양.
▲2008년 2월 19일 카스트로 권력 이양 후 19개월 만에 등장해 모든 공직에서 퇴임 강조. 닷새 후 라울 카스트로 새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선출.
▲2010년 8월 7일 은퇴 후 4년 만에 첫 의회 연설서 미국 설득해 핵전쟁 피할 것을 촉구.
▲2012년 2월 3일 ‘피델 카스트로 루스:시대의 게릴라(Guerrillero del tiempo)’라는 제목의 자서전 출판.
▲2012년 3월 쿠바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회동.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중남미 각국 정상 등 아바나 자택으로 불러 왕성한 외교활동.
▲2015년 4월 11일 미국-쿠바 외교관계 정상화 선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장 양국 정상 간 59년 만에 역사적 회동.
▲2015년 8월 13일 카스트로 89세 생일 맞아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쿠바에 큰 빚을 졌다”며 외교 단절에 따른 쿠바의 경제 봉쇄 피해 거론.
▲2015년 9월 20일 쿠바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회동.
▲2016년 3월 21일 오바마-라울 카스트로, 아바나에서 88년 만에 역사적인 정상회담. 오바마와 피델 카스트로 회동은 불발.
▲2016년 4월 19일 카스트로, 공산당 제7차 전당대회 폐회식에서 “나는 곧 90살이 된다. 곧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것이며, 시간은 모두에게 찾아온다”면서 “아마 이번이 내가 이 홀에서 말하는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라며 죽음 암시.
▲2016년 8월 13일 구순 생일. 최룡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쿠바 방문해 생일 선물 전달.
▲2016년 11월 25일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