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이 급해서 그런 거예요.”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이 새누리당을 탈당한 11월22일, 몇몇 비주류 의원들은 이런 반응을 내놓았다. ‘나도 곧 동반 탈당할 것’이라는 답을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먼저 나간 두 사람만 ‘제 분을 못 이겨 뛰쳐나간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왕따’처럼 보였다.
여당 내 비주류는 그동안 친박 지도부에 사안마다 반기를 들었다. 4·13총선 이후에는 선거 참패 책임론을 놓고 주류를 맹공했다. 여론은 유리했지만 비주류의 거사가 언제나 그랬듯이 성공하는 듯 보이다가 한순간 물거품이 됐다. 비주류들은 늘 현안이 생기면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확실한 구심이 없어 보이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남 지사가 당을 나가면서 당내 최다선인 서청원 의원을 향해 “정계를 은퇴하라”고 했다. 탈당을 하면서 꺼낸 말로는 생소했지만 남 지사는 “탈당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서 의원에게) 모욕도 당하고 회유도 당했다”며 “정당 내부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 “군사정권 때나 조폭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친박들의 당 운영 행태에 쌓인 게 많았다는 것을 에둘러 내비친 것이다.
다른 비주류 의원들 중에서도 친박으로부터 압박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온다. 비주류 중진 의원 중에는 이정현 지도부 사퇴를 위한 연판장을 돌릴 때 ‘서명하지 말라’는 압박을 직접 받았다는 이들도 있다. 또 다른 의원은 비주류 모임에 참석하고 나면 ‘김무성 좋은 일 시킬 일 있느냐’는 항의전화가 바로 왔다고 한다.
비주류에서는 S·C·Y의원 등 3명을 꼭 집어 지목하고 있는데 이들 세 명이 보이지 않게 당내 여론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친박 핵심들이 비주류가 지도부에 반하는 집단행동을 할 때마다 나서 보이지 않는 손을 가동했다는 게 일각이나마 확인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중진으로 당의 내홍이나 분열을 막기 위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는 옹호론도 없지 않지만 남 지사의 말대로 “뒤에서 지시하고 회유하는 일이 암암리에 진행되는 것”은 투명하게 운영돼야 할 공당으로서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21세기 정당체제에서 공당의 의원들이 ‘통제되는 느낌’을 받도록 특정계파가 배후에서 힘을 쓰고 있다면 그 자체로 비판이 대상이 될 수 있어서다.
이번에는 비주류가 민심을 반영해 야 3당과 탄핵 공조라는 ‘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막판에 또 동요하는 분위기다.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의 퇴진 선언을 하면서 탄핵을 발의해야 할 상황 전제가 사라진 이유가 크지만 이번에도 친박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돈다.
여당 지도부는 그동안 민심과 동떨어진 결정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고 당 지지율이 덩달아 곤두박질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 업체의 정당지지율을 보면 새누리당은 16%로 추락했다. 여당 지지율이 20% 이하로 떨어진 것도 이례적인데 두 야당보다도 낮다는 것은 현 친박 주류 지도부가 심히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이번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만큼은 친박이 빠지는 것이 어떨까 싶다. 기존에 했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시켜 야당과의 탄핵 공조를 흔들지 말라는 것이다. 집권 여당으로 대통령 탄핵을 지켜보는 것은 아프겠지만 민심이 원하고 보수진영이 다시 살아나는 데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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