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12월1일, 미국 미시간주 포드자동차 하일랜드 파크 공장. 작업대가 대부분 사라졌다. 대신 들어선 것은 컨베이어 벨트로 대표되는 이동형 생산 라인(Moving Assembly). ‘사람이 일에 가는 게 아니라 일이 사람에게 오는 생산 시스템’은 인간이 노동을 시작한 이래 최초의 변화였다. 포드 자동차의 창업주 헨리 포드는 시카고의 도축 공장에 매달린 고기 덩어리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노동자가 움직이는 대신 고깃덩어리가 천장에 설치된 모노레일에 매달려 작업순서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자동차 제작에 응용한 것이다.
마침 노동 생산성 향상에 고민하고 있던 터. 하루 9시간 노동 가운데 4시간은 걸어 다니는 데 소비하는 노동 형태를 개선하려던 포드에게는 반대 의견도 적지 않게 나왔다. 포드는 ‘노동자 1만 2,000여명이 하루 열 걸음만 덜 걸어도 전체적으로 80㎞가 절약되며 에너지도 덜 쓸 수 있다’며 반대를 잠재우고 공장을 뜯어고쳤다.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의 높이와 속도를 면밀하게 분석, 시행 3개월 만에 최적의 작업 모델을 찾아냈다.
생산라인의 혁명은 극적인 생산 증대로 이어졌다. 작업장을 옮겨 다니며 일하던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서 컨베이어 벨트가 쏟아내는 부품을 단순 가공하자 효율이 높아졌다. T형 승용차 1대당 조립 시간이 5시간50분에서 1시간 38분으로 줄어들었다. 생산량도 1910년 1만9,000대에서 1914년 27만대로 늘어났다. 1915년말 포드사는 100만대째 T형 자동차를 출고했다. 1908년 첫 생산 이래 1927년 단종될 때까지 누적 생산량 1,500만7,033대. 단일 차종으로는 독일 폴크스바겐사의 ‘비틀(딱정벌레)’에 이어 세계 2위 기록이다. 덕분에 T형차에는 ‘현대를 탄생시킨 자동차’라는 영광스러운 평가가 붙었다.
미국이 자동차 왕국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때부터다. T형 차가 나오기 전까지 세계 자동차 시장의 70%를 차지하던 프랑스를 완전히 제쳤다. 1924년께 미국에는 천만대의 T형차가 굴러다녔다. ‘T형 자동차는 추월할 수 없다’는 말도 생겼다. 앞지르고 또 앞질러도 또 다른 T형차가 나타났으니까. 전성기 때 전세계 승용차의 절반은 T형차였다. 대량생산은 생산원가와 가격도 떨어뜨렸다. 대당 850달러로 그렇지 않아도 업계 최저 수준이던 T형차의 가격은 하락을 거듭하며 1923년에는 290달러까지 떨어졌다. 15년 동안 가격이 오르지 않고 오히려 65.8%나 하락한 것이다. 같은 기간 중 80% 가량 오른 물가를 감안하면 실질 인하율은 81.4%에 달한다.
포드의 공장에는 찬사가 쏟아졌다. 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강조한 분업과 프레드릭 테일러가 역설한 과학적 관리법이 접목해 미국 시스템이 탄생했다며 포드를 추켜세웠다. 포드의 진짜 비결은 끊임없는 혁신 노력. 1903년 회사설립 당시부터 공구와 부품을 규격화하고 공정을 단순화시켜 경쟁업체의 절반 가격에 차를 내놓았다. 1907년에는 공장의 경사면을 따라 4층 차체 제작, 3층 바퀴 부착과 도장, 2층 세부 조립, 1층 최종 검사로 이어지는 연속공정을 선보였다. 도축장에서 이동식 작업 라인 아이디어를 얻기 전부터 포드의 공장은 이미 미국식 혁신의 모델이었다.
포드의 혁신은 부작용도 낳았다. 사람이 기계처럼 일하는 반복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은 단순 작업에 싫증을 내고 공장을 떠났다. 100명의 직원을 유지하기 위해 900명을 채용할 정도로 이직률도 높았다. 포드는 이런 문제를 고임금으로 넘었다. 다른 회사의 두 배에 이르는 고임금(일당 5달러)으로 포드사 공장 앞에는 취업을 원하는 노동자들이 진을 쳤다. 고임금과 대량생산 체제는 포드 시스템을 이루는 두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포드의 성공은 미국 내 제조업 전분야로 퍼졌다. 대량생산 체제에 힘입어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라는 위치를 굳혔다. 미국이 영국을 대신하는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잡은 것도 대량생산을 통한 가격경쟁력 덕분이다. 얼마 안 지나 전세계의 공장은 미국식 모델로 바뀌고 ‘포드주의(Fordism)’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포디즘은 이탈리아의 좌파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옥중수고(1934)’에서 처음 사용한 이래 미국식 대량생산체계를와 동의어가 됐다.
헨리 포드가 103년 전 선보인 대량생산 시스템은 여전히 전세계 공장의 표준 모델이다. 도요타 자동차가 자발적 노동의욕을 유도하고 작업 판단을 노동자의 자율에 맡기는 생산 방식을 도입하고 현대자동차가 동일한 생산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동시에 생산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여전히 대형 공장들은 컨베이어 벨트로 돌아간다.
노동을 단순한 물질로 전환한 포디즘에 대해서는 비판도 적지 않다. 챨리 채플린은 1936년 개봉작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대량생산을 위한 기계 문명의 도구로 전락한 노동 인간을 날카롭게 풍자했다.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Distopia) 소설인 ‘멋진 신세계’(1932)에 나오는 미래사회에서 포드는 신(神)이다. 성분에 따라 차별사회에서 사람들은 ‘오, 하나님(Oh, my God)’이 아니라 ‘오, 포드님(Oh, my Ford)’를 뇌까린다. 시대 배경은 AF(After Ford) 632년. ‘‘기원후(After Domine)’로는 2540년에 해당된다. 포드가 T형차를 처음 생산한 1908년이 포드 기원의 시작이다. 헉슬리는 이 소설에서 헨리 포드가 열어놓은 현대 문명 세상의 비인간화와 차별의 문제를 역설적으로 그렸다.
혁슬리의 예상대로 포드의 대량생산 시스템은 수백년이 흐른 뒤에도 존속하고 사회의 근간으로 자리 잡을까. 단정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노동의 비인격화, 부품화 문제 뿐 아니다. 정규직 여부에 따라 임금이 크게 달라지는 노동시스템은 건강하지도, 지속적이지도 않다. 포드의 노사정책과도 정반대다. 포드의 고임금은 생산성 향상은 물론 T형차의 잠재수요를 늘리는 선순환으로도 이어졌건만…. 짜내기와 차별이라는 한국적 포디즘의 끝이 걱정된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