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정치 외풍 휘둘리는 국가R&D] 예산배분서 관리까지 '부조리·권력입김' 우려…갈길 먼 국가R&D

<상>최순실 농단 의혹에 관리부실까지

정유라 지도교수, 한국연구재단 기획 '셀프수주'

연구단장은 새누리 당직자…정치적 중립성 위배

관리감독 허술 구조적 취약성에 꼼수·불법 온상

신용현 의원 "정치권 영향력 과학계까지 이어져"

0515A14 연구재단 수정10515A14 연구재단 수정1




“30년 넘게 과학계에 몸담으면서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의 연구비 배분에 ‘당적’을 가진 사람이 개입한 것은 처음 봅니다. 국가주도의 톱다운(Top-down) 방식 R&D(연구개발)체제에서 정부나 정치권의 영향력이 과학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출신으로 4·13총선에서 국민의당 비례대표 1번에 발탁됐던 신용현 의원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연 4조 원대의 국가 R&D 자금을 배분하는 한국연구재단 등 과학계가 정치적 외풍에 휘둘리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과학기술계와 학계의 반칙과 부조리도 커졌다는 것이다. 과학기술계 일부에서도 “국가 R&D 연구비 배분이 불투명하고 집행과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치권과 비선 라인의 입김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 의원이 지적한 사례 중 하나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편의를 봐준 이인성 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 교수가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를 8억원가량 수주했고 그 배후에 새누리당 당직자 출신의 김태희 한국연구재단 사회 및 복지기술 분야 연구단장(PM)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014년 새누리당 부대변인직을 맡았고 4·13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다 탈락했다. 준정부기관인 연구재단에서 정치적 중립 의무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연구재단에서 김 전 단장이 관리한 R&D 자금은 2014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총 555억원이나 됐다. 이 교수는 지난해 2월 연구재단 과제를 기획·검토하는 기획위원으로 위촉돼 50억원 규모의 ‘소방·방호장비 연구과제’ 제안서를 작성, 도출하고는 지난해 3월 발주된 ‘보급형 소방·방호장비 및 응급 구난장비의 디자인 기술·개발’ 과제를 ‘셀프 수주’하며 8억2,000만원을 타냈다. 이 교수는 ‘최종 기획 참여자는 사업신청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최종 회의에는 참여 연구원인 신모 교수를 대신 보내는 ‘꼼수’를 썼다. 신 의원은 “정유라씨에게 특혜를 준 이대 교수 3인은 1인당 3년간 각각 15억여원씩 정부연구비를 받았다”며 “그전 실적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이며 과정도 석연치 않아 연구재단이 이대 연구팀을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문제는 연구재단이 내부적으로 김 단장에 대한 징계절차를 논의하고 있으나 뚜렷한 징계기준도 불분명하고 예산 낭비 부분에 대한 회수 방안도 모호하다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연구재단의 한 관계자는 “PM은 2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데 연구재단 내규의 적용을 받는지는 유권해석을 해봐야 한다”고 내부 검증 시스템의 부재를 시인했다. 여기에 김 단장과 이 교수의 관계도 검찰과 경찰의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자칫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셀프 수주’ 건도 최근 미래부 조사 결과 드러나는 등 연구재단의 R&D 관리체제에 구멍이 났다. 서울 S대 A 교수는 연구재단이 2014년 5월 발주한 3년짜리 사회문제해결형 R&D ‘안전한 물 공급 체계 구축’ 중 8,000만원 규모 위탁과제 책임자로 선정됐는데 기획회의에 5차례 참석하고 그것을 자신이 수주했다. 과학계의 한 관계자는 “연구재단의 폐쇄적인 과제 기획회의 내용을 공개형으로 바꿔 PM과 기획위원의 정보 독점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PM 관리·감독 구조나 전문성에 대한 우려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연구재단 PM 565명(올 5월) 중 95.3%인 593명이 대학 출신이고 정부출연연구소나 산업계 출신은 합쳐야 31명(4.7%)에 그친다”며 “다양한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PM 확대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출연연구원 원장 선임 과정에서 청와대가 입맛에 맞는 인사를 고르느라 수장 자리가 표류하는 일도 다반사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신 의원이 원장직에서 사퇴한 뒤 추천위에서 올린 인사들이 잇따라 청와대로부터 퇴짜를 맞다가 올 6월 권동일 전 원장이 우여곡절 끝에 취임했지만 보유주식 등의 문제로 4개월 만에 물러났다. 지난 9월 이사회에서 연임이 결정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박영아 원장은 현 정부에 쓴소리를 하다 미래부로부터 올 10월과 11월 거듭 연임 불가통보를 받았다.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도 지난 9월 임기를 1년 앞두고 갑자기 사퇴해 청와대 인사개입 의혹을 낳았다. 창의재단에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에서 5급 행정관으로 근무한 최순실씨 조카의 처남이 채용되기도 했으며, 정유라씨 특혜의혹 이대 교수 3인 중 한 명의 남편이 후임 이사장에 응모했다가 문제가 되자 철회했다.

조양준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