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쌓여있던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가 청와대 바로 앞에서 터져 나왔다.
3일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들은 청와대 바로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청와대를 향해 국화를 던지는 퍼포먼스로 세월호 희생자들이 탄 배가 가라앉는 동안 ‘부재중’이었던 청와대를 향한 슬픔을 토해냈다. 이날 집회 참석자들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 16일을 기리는 416개의 횃불로 국민들의 퇴진요구에도 여전히 대답 없는 청와대를 향한 분노를 나타냈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을 주위에서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촛불집회가 이어지면서 세월호 참사가 다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이날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6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416가족협의회 등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사진을 인쇄한 펼침막을 앞세우고 오후 4시쯤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내자동로터리를 지나 자하문로를 통해 청와대 앞까지 행진했다. 행진의 가장 앞에 선 이들은 이날 행진이 허가된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효자치안센터 앞에 이르러 행진의 선봉에 서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앞서 세월호 유가족은 박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2014년 8월 22일부터 76일간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인바 있다. 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는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멈춰선 트럭 위에 마련된 단상에 올라 발언 기회를 얻자 마이크를 잡고 “여기까지 오기가 이렇게 힘들었다”며 오열했다. 순간 인근에 있던 집회 참가자들 사이엔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의 흰 국화를 손에 들고 행진했던 세월호 유가족은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과 진상규명, 미수습자 수습을 요구하면서 행진을 막아선 경찰을 앞에 두고 청와대를 향해 국화꽃을 한 송이씩 던졌다.
3일 오후 6시에 시작된 본 집회에는 세월호 미수습자인 단원고 2학년1반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씨가 발언기회를 얻어 단상에 올랐다. 이씨는 “저는 지금도 4월16일에 살고 있다. 은화가 불렀을 마지막 이름이 ‘엄마’였을 것”이라며 “세월호는 아직 바다 속에 있고 은화와 다른 미수습자들도 가족 품에 돌아오기를 원한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세월호 인양은 미수습자에게는 가족을 만나는 것이고, 희생자에게는 진상 규명이고, 생존자에게는 친구가 돌아오는 것”이라며 “그래야 국민이 국가에 보호 받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의 발언에 일부 참가자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어 시작된 청와대를 향한 두 번째 행진에서는 횃불이 등장했다. 마스크를 쓴 채 길이 70cm가량의 횃불을 든 청년들이 줄을 지어 청와대로 향했다. 6차 촛불집회 주최 측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 16일을 기리는 416개의 횃불로 국민들의 퇴진요구에도 여전히 대답 없는 청와대를 향한 분노를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횃불의 등장에 힘을 얻은 참가자들은 구호를 더욱 크게 외치며 청와대로 행진했다.
퇴진 요구에도 버티고 있는 박 대통령의 모습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도 증폭되면서 집회참가자들 중 일부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세월호 침몰 후 박 대통령이 모습을 나타내기까지 걸렸던 7시간의 진실을 밝히라는 의미로 이날 오후 7시 정각에 맞춰 진행된 1분 소등행사는 전국적인 참여로 장관을 자아냈다. 또 이날 집회에서는 이전 집회들과 비교해 훨씬 많은 참가자들이 밤늦게까지 416가족협의회 등 세월호 유가족들이 탄 트럭을 따라 퇴진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한 집회 참가자는 세월호 유가족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유가족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참사 후 잠시 슬퍼하고 잊고 살았는데 최근 불거지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세월호 유가족이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