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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커튼콜' 블록버스터 영화를 능가하는 깊이감에...앙코르를 외치고 싶어질걸!

그들은 루저(Loser)였다. 꿈많던 20대 시절에는 “셰익스피어를 잘근잘근 씹어먹을” 연출 신동이었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앞날이 촉망되던 배우들이었으며, 사람들이 얼굴만 봐도 알아보는 유행어 제조기였지만 지금은 어두컴컴한 지하 소극장에서 ‘여교사의 비밀과외’와 같은 삼류 에로연극이나 만드는 대학로의 막장인생이다.

그런 루저들이 감히 연극의 최고봉인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최고 걸작인 ‘햄릿’에 도전장을 던진다.


12월 8일 개봉을 앞둔 류훈 감독의 ‘커튼콜’은 삼류 에로극단이 ‘햄릿’에 도전하며 벌어지는 일대 소동을 그린 영화다. 이런 영화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모두에게 무시를 당하던 루저들이 비록 실패할지언정 일류들과 대등한 모습을 펼치며 큰 박수를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커튼콜’은 이 뻔한 공식을 거부한다.

영화 ‘커튼콜’ / 사진제공 : 모멘텀엔터테인먼트영화 ‘커튼콜’ / 사진제공 : 모멘텀엔터테인먼트




영화 ‘커튼콜’ / 사진제공 : 모멘텀엔터테인먼트영화 ‘커튼콜’ / 사진제공 : 모멘텀엔터테인먼트


‘커튼콜’은 전형적인 루저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막이 오르면 지하 소극장의 조명 아래서 배우들이 숨을 헐떡이며 베드신을 연기하고, 관객들은 이 모습을 지켜보며 침을 삼킨다. 심지어 어떤 커플은 어둠을 틈타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는 배우들 이상으로 뜨거운 베드신을 객석 구석에서 연출하기도 한다.

식대 만원에도 벌벌 떨어야 하는 이 삼류 에로극단의 ‘웃픈’ 현실이 보여지면, 그 다음에는 꿈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연출자 민기(장현성 분)는 대학로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 삼류 에로극단과 함께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기념 ‘햄릿’ 공연에 도전장을 던진다. 그리고 이 순간부터 ‘커튼콜’은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선보인다.


삼류 에로극단의 ‘햄릿’은 분명 시작은 정상이었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황당한 전개가 이어진다. 배우들간의 질투로 인해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주인공 햄릿(이이경 분)이 죽어버리는 비상사태가 벌어지고, 여기에 주어진 대본 이외에는 연기하지 않는다는 걸그룹 출신 오필리아 슬기(채서진 분)와 뛰어난 연기파 배우지만 치매로 인해 대사가 오락가락하는 노배우 진태(전무송 분) 등이 연이어 사고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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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4분의 런타임을 지닌 ‘커튼콜’은 영화 전체의 2/3에 달하는 60분 분량을 고스란히 돌발상황이 연이어 벌어지며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아득하게 멀어지고 만 이 연극무대와 백스테이지를 번갈아 보여준다. 무대에서 어떻게든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배우들의 모습이 긴장감과 함께 웃음을 만들어낸다면, 백스테이지에서는 연극을 완성하려는 루저들의 처절한 사투가 눈물과 함께 펼쳐진다.

잠시의 여백도 허용치 않는 ‘커튼콜’의 뛰어난 이야기는 단편영화 시절부터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주목받았던 류훈 감독의 장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야기보다 장르와 스케일에 매진하는 영화들이 범람하는 지금의 충무로에서 이야기와 배우의 연기로 한 편의 영화를 이끌어가는 류훈 감독의 재능은 범상치 않다.

영화 ‘커튼콜’ / 사진제공 : 모멘텀엔터테인먼트영화 ‘커튼콜’ / 사진제공 : 모멘텀엔터테인먼트


영화 ‘커튼콜’ / 사진제공 : 모멘텀엔터테인먼트영화 ‘커튼콜’ / 사진제공 : 모멘텀엔터테인먼트


여기에 연기인생 50년을 훌쩍 넘긴 대배우 전무송을 비롯해 장현성, 박철민 등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연기는 저예산 영화인 ‘커튼콜’에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깊이를 더한다. 아마도 무대에서 펼쳐지는 황당한 상황에 정신없이 웃다보면 어느 순간 코끝을 찡하게 자극하는 인간냄새가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커튼콜’의 마지막 장면은 ‘커튼콜’이라는 제목처럼 배우들의 화려한 커튼콜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실제 연극을 보듯이 단역부터 순서대로 큰 박수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커튼콜’의 마지막 ‘커튼콜’은 가슴에 다시 한 번 따뜻함을 전한다.

비록 영화에서 이 루저들의 연극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고, 루저들은 이 작품 이후 다시 삼류 에로연극 무대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가 안 될 것이라고 했던 한 편의 연극을 마쳤고, 이것은 루저들에게는 새롭게 다시 한 번 시작할 희망이 될 것이다. 굳이 성공하지 못한다고 한들 어떤가? 너무나도 먼 길을 돌아온 그들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커튼콜’의 엔딩은 가슴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12월 8일 개봉.

원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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