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CEO&스토리]최선희 초이앤라거갤러리 대표

"사람·네트워크 힘으로 우리 미술 세계에 알릴 것"

런던 파리 쾰른에서 갤러리 운영하며 한국에도 분관 낸 최선희 대표./권욱기자런던 파리 쾰른에서 갤러리 운영하며 한국에도 분관 낸 최선희 대표./권욱기자


“우리가 가진 작가들, 즉 사람이 경쟁력이고 네트워크가 힘입니다. 세계 미술계가 글로벌화하고 각국에 아트페어가 생겨나면서 화랑들은 유목민처럼 움직입니다. 초이앤라거갤러리는 독일 쾰른에 위치하고 있지만 런던과 파리에 거점을 둔 유럽의 삼각형 체제를 기반으로 서울과 아시아로 영역을 넓히고 있어요. 화랑은 작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확장성을 키워가며 우리 미술을 세계에 알릴 기회를 만듭니다.”

과거 화랑 사업은 ‘공간 중심’이었다. 더욱이 한국의 미술 시장은 “부동산 사업과 다를 바 없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입지가 중요했고 실제 화랑가 형성으로 인한 지가(地價) 상승은 인사동·삼청동과 신사동 가로수길, 한남동 등지에서 확인됐다. 그러나 쾰른에 소재한 초이앤라거갤러리의 최선희(44·사진) 대표는 입지보다는 인적자원의 역량, 이동하며 확장하는 네트워크의 힘을 강조했다. 그의 사업장은 독일이지만 집은 프랑스에 있다. 동업자인 큐레이터 야리 라거의 ‘유니온갤러리’는 영국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다 지난 5월에는 중국·미국·프랑스 등지에서 활동하는 갤러리들과 합심해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네이처포엠빌딩 3층에 4개국 화랑 연합체제인 스페이스칸을 개관했다. 공간은 ‘작더라도 실속있게’, 대신 전시는 왕성하다. 독일에서만 연 5회의 전시, 연간 7~8개의 국제아트페어, 타 미술기관과의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 2개, 한국에서의 전시 3회와 런던·파리의 기존 전시까지 쉴 틈이 없다.


배낭여행길 ‘가난한 어부’ 작품에 매료

미술사 공부 올인…경매사·갤러리 근무

세계적 화랑 소속 라거 대표와 손 잡고

한국미술 기획, 출품작 모조리 팔기도

그림 한 점 때문에 한 사람의 일생이 바뀌기도 한다. 최 대표에게는 피에르 퓌비 드샤반의 ‘가난한 어부’가 운명적 작품이었다. 어려서부터 화집을 좋아했던 그는 쌍둥이 언니와 함께 떠난 배낭여행길에 들른 오르세미술관에서 우연히 그 그림과 마주친 후 어렴풋하지만 운명의 힘 같은 것을 느꼈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항공사에서 근무하다 프랑스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1998년 파리로 이주했다. 소르본대 어학연수 과정에는 불문학과 더불어 미술사가 필수이수과목이었다. 그렇게 접한 미술사 수업은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학교에서 배운 그림은 루브르든 오르세든 즉시 밖으로 나와 미술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주재원 신분의 남편을 따라 런던으로 옮겨갔고 다시 항공사에 근무하면서도 미술에 대한 열망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운영하는 경매학교를 다니며 미술사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런던 크리스티경매 본사 동양미술부에서 인턴으로도 일했다. 현장에서 일하다 현대미술의 매력에 눈을 떴다. ‘차이니즈컨템포러리’라는 동양미술 전문 갤러리에서 일하며 전시를 기획할 기회를 얻었다.

따지고 보면 동업자와의 인연은 ‘한국미술’이 매개였다. 최 대표의 첫 기획전을 보러온 런던 유니온갤러리의 라거 대표는 2002년 당시 세계적 화랑인 리슨갤러리 소속으로 처음 한국에 왔고 김창일 아라리오갤러리 회장과의 인연으로 한국 작가에 대한 관심과 인맥이 상당했다. 2006년 둘이 공동기획한 첫 전시 프로젝트가 유니온갤러리에서 열렸다. 지금은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로 성장한 이형구·정수진·백현진·이동욱·권오상 등 5명이 참신한 젊은 작가로 참여했다. 마침 전시기간이 유럽 최대의 아트페어인 ‘프리즈’와 맞물려 세계적 컬렉터들이 런던으로 몰렸고 당시 출품작은 모조리 팔렸다.

“이형구 작가의 ‘아니마투스(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을 골격으로만 표현한 캐릭터)’ 시리즈가 해외에서 전시된 것은 처음이었는데 무척 신선하다는 반응이었어요. 데이비드 코헨 같은 빅 컬렉터가 작품을 소장하는 계기가 돼 보람 있었습니다. 전시 직후인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이형구씨가 한국관 단독작가로 선정돼 전시하는 것을 보며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갤러리의 의미를 알았고 강력한 자극이 됐어요.”

전시기획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지만 최 대표는 가족과 함께 다시 파리로 이사하게 됐다. 위기는 늘 새로운 계기였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파리의 아파트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해 ‘살롱전’을 기획했고 지금은 연례기획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런던에서도 전시는 계속됐다. 영국과 한국의 국가번호에서 착안한 ‘4482’ 프로젝트는 건물 한 채를 통째로 빌려 골드스미스·슬레이드·첼시 등 런던의 주요 미술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한국 작가 40여명을 선보인 자리였고 한국 현대미술가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증폭제로 작용했다. 당시 학생 신분으로 참여한 김아영 작가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했고 삼성문화재단이 후원하는 파리 시테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됐다.


유망 작가들 확보, 아트페어 장벽 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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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작지만 실속있게’ 왕성한 전시

獨·佛·英 거점 유럽 활동, 중국 공략도

컬렉터들, 국내미술 주목…공감 이끌 것

안목 있고 손발이 잘 맞으니 간헐적으로만 전시하는 걸 넘어 같이 일해보자는 생각에 ‘초이앤라거갤러리’를 구상하게 됐다. 그러나 파리는 건물 임대료가 싼 편이지만 세제가 무겁고 런던은 시장이 크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선을 돌려 주목한 독일은 동업자의 고향인 동시에 최 대표의 언니가 사는 곳이었다. 마침 쾰른에 있던 큰 화랑이 베를린으로 이전하면서 공간도 확보돼 2012년 12월에 개관했다.

“화랑은 작고 신생이지만 우리의 경력이나 같이하는 작가들이 노련하니 세계적 컬렉터와 큐레이터, 작가들이 모여드는 아트페어를 확장과 확산의 매개로 삼았습니다. 아트페어도 심사를 거치며 나름의 진입 장벽이 있는데 창립 2년 만에 7~8개를 ‘뚫으니’ 유럽의 갤러리들이 놀라더라고요. 아시아 쪽은 홍콩의 아트센트럴에 참가 중이고 내년부터 상하이에도 진출하려 합니다. 한국은 내수시장이 너무 작으니 드넓은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게 살길이에요. 우리 고객은 주로 아트페어에서 만난 독일·파리·홍콩의 컬렉터들입니다.”

하지만 아트페어는 부스비(참가비)에 운송비·체류비까지 포함하면 매번 2,000만~3,000만원 이상이 소요된다. 미술품이 자산으로 분류되면서 화이트큐브나 가고시안 같은 대형 화랑은 이미 검증된 블루칩 작가를 선호하고 젊은 화랑은 실험적인 작가로 경쟁한다. 자본주의 논리는 미술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 작가와 유럽 작가를 모두 확보하고 있으니 든든합니다. 유럽인의 한국 작가에 대한 관심, 한국 컬렉터의 유럽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죠.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도화선이 되어 이제 한국 현대미술을 발굴하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는 만큼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깜짝 놀랄 만한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만이 지닌 특수한 역사·정치·사회성이 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현세대의 가치관과 사회를 이야기하며 세계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이런 진지한 고찰을 담고 있는 작품에 대해 서양의 컬렉터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소개하는 작가들이 언젠가는 정상에 오르리라는 믿음, 그 끈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유럽과 미국의 문화적 인프라, 중국의 급성장한 경제력, 중동의 오일머니 등이 장악한 세계 미술 시장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우뚝 설 희망을 그가 보여주고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She is…  △1972년 서울 △1991년 덕성여고 졸업 △1994년 상명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2001~2002년 런던 크리스티인스티튜트 미술사 과정 △2005년 런던 차이니즈컨템포러리 기획전 △2008년 저서 ‘런던미술수업(아트북스 펴냄)’ 출간 △2012년 독일 쾰른 초이앤라거갤러리 개관 △2016년 서울 청담동 스페이스칸 공동개관She is… △1972년 서울 △1991년 덕성여고 졸업 △1994년 상명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2001~2002년 런던 크리스티인스티튜트 미술사 과정 △2005년 런던 차이니즈컨템포러리 기획전 △2008년 저서 ‘런던미술수업(아트북스 펴냄)’ 출간 △2012년 독일 쾰른 초이앤라거갤러리 개관 △2016년 서울 청담동 스페이스칸 공동개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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