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물론 WEF가 내놓은 ‘정부 부문’의 경쟁력은 처참했다. 경쟁력은 매년 떨어졌다. WEF의 국가경쟁력 분석을 보면 ‘정책 결정의 투명성’은 지난 2007년 34위에서 지난해 123위까지 급락했다. 공무원 의사 결정의 편파성은 같은 시기 15위에서 80위(2016년 82위), 정부 지출의 낭비 여부도 22위에서 70위로 급락했다. 물론 정부의 주장대로 이는 설문조사의 한계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IMD에서 내놓은 결과도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IMD의 자료를 보면 ‘정책의 투명성’ 부문은 34위에서 40위(2016년 43위)로 하락했고 정부 정책의 적절성 항목도 같은 시기 34위에서 45위(2016년 46위)로 떨어졌다. WEF가 140개국, IMD가 6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다는 점에서 두 기관을 통해 평가된 한국 정부의 경쟁력과 신뢰도는 낙제점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개발시대는 그래도 관료들의 경쟁력이 민간 부문을 앞섰고 실제 국가 경제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끌며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을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경제관료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정부의 경쟁력은 이들이 끌어올렸다. 정부 부처의 한 고위관료는 “과거에는 장관과 같은 사무관 소리를 들었던 배짱 있고 능력 있는 선배들도 많았다. 장관을 주도로 해 관료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고 일을 시켰기 때문”이라면서 “청와대는 물론 국회, 심지어 사법 당국에까지 맞짱을 뜰 수 있었던 이유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모습은 기록과 기억 속에서나 존재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한 뒤 고립된 섬이 돼 있는데다 최순실 사태로 경제주체들에 대한 정부의 믿음은 사실상 깨졌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부문에서 신뢰도가 떨어진 것은 비선 조직과 정치 등이 무분별하게 경제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검찰 등 사정기관이 동원되기도 했다”면서 “결국 국민들과 기업인들은 경제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5년 단임 정부가 성과를 내기 위해 경제 관련 조직을 수직구조화해서 주체들을 압박한 측면이 있다”며 “결국 이것도 정부가 신뢰를 잃게 된 한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정부의 역할을 무시할 수도 없다. 내년의 경우 400조원 이상이 되는 예산을 가지고 각종 정책을 펼친다. 새로운 성장동력의 방향도 잡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관료사회와 전문가들은 작금의 질곡을 타개할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갖는 역할은 여전히 큰데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는 차치하고 3만 달러 시대 진입도 힘들 수 있다는 얘기다.
먼저 역할 분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관에게 내부 인사나 정책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위임해 부처별 업무가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시장은 이제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정책 신뢰 회복이 제일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경제관료들의 고유 역할과 권한을 보장해주고 책임 소재는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 원장도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고 경제는 부총리가 책임지고 끌고 나가야 한다”며 “경제정책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국민과 기업들의 경제정책 신뢰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섬이 돼버린 정부세종청사에 대한 현실적인 해법 마련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세종 이전 이후 나타나는 각종 문제점을 해소하지 않는 한 관료의 경쟁력 향상은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세종으로 국회를 내려보내야 한다느니, 청와대가 이전해야 한다느니 이런 것들은 모두 부질없는 해법들”이라면서 “KTX 세종역만 만들어도 기업·국회·청와대 등과 세종은 바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지금은 세종 사무실을 나와 여의도까지 2시간 30분 이상 소요된다”면서 “하지만 세종역만 만들어도 계산해보니 1시간30분이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과천에서 여의도를 가는 시간과 비슷하다. 세종을 제2의 과천으로 만들면 관료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