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은 사업가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하지만 누군가 한번쯤 생각해봤을 법하거나 혹은 너무 사소하다고 치부되기 쉬운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시장에 선보이는 것 역시 사업가의 역량이다. 병뚜껑 모양의 티백 ‘티업(Tea Up)’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김범수 티업 대표는 후자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업가다.
김범수 대표의 첫인상은 ‘단단함’이었다. 사업상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져진 내공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김 대표는 건장한 몸을 자랑한다. 단단한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는 흡사 운동선수의 기운과 유사해 보였다. 그는 철인 3종 경기 마니아다. 지난 2010년과 2011년 제주 국제아이언맨 대회에서는 2년 연속으로 250km에 달하는 풀코스를 완주했다. 현재 김 대표는 사단법인 한국철인3종협회 상임부회장도 맡고 있다.
김범수 대표는 뼛속부터 사업가다. 티업 이전에도 다양한 사업을 해왔다. 물론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사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실패가 예상되면 과감히 다른 아이템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티업 창업 전 네팔에서 도자기 사업을 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질 무렵, 그는 우연한 기회에 차(茶) 시장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김 대표는 말한다. “인도 시장을 타깃으로 네팔 현지에 공장을 마련해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실패했어요. 큰 반응이 없었거든요. 매출이 없다 보니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빡빡해졌습니다. 그럴수록 대표인 제가 힘을 내야 하는데 저마저도 의욕을 잃어버렸습니다. 건강도 나빠졌어요. 그때 마침 현지 직원이 저에게 히말라야에서 나고 자란 녹차 한 잔을 건네더라고요. 네팔에서는 심신이 지치고 고단할 때 차 한 잔을 마시면서 힐링을 한다는 거였죠. 별 생각 없이 차를 매일 마시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신기하게 몸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차를 마시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다 보니 마음이 안정되고 건강도 좋아졌죠. 그때 ‘아, 이거다, 한국에서 차 사업을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도전에 나섰죠.”
당시 김 대표가 생각한 사업 아이템은 히말라야 유기농 녹차 수입·판매였다. 하지만 곧 난관에 부딪혔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차의 원재료를 수입할 때 붙는 관세가 너무 비싼 까닭이었다. 현재 수입산 녹차에는 현지 구입가의 무려 5배가 넘는 관세가 붙는다. 우롱차, 홍차 등 다른 차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김 대표는 엄청난 관세를 반영해 국내 판매가격을 정하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힘들다고 봤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는 먼저 시장 분석에 착수했다. 그리고 편의점, 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 중 하나가 헛개차, 옥수수차 등 냉차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발품을 팔며 시장 분석을 하던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김 대표는 티업 탄생의 배경이 된 장면 하나를 접하게 된다.
김 대표는 말한다. “조금 짜증 섞인 표정을 하고 있는 한 여성이 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여성의 앞에는 생수병 하나가 있었죠. 정확히 말하면 ‘티백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생수병’이었어요. 티백을 생수병에 넣고 우려내기 위해 실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던 찰나에 끈이 끊어져버린 거죠. 순간 무릎을 ‘탁’ 쳤어요. ‘실이 없는 티백, 끊어질 걱정 없이 쉽게 우려낼 수 있는 티백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그는 즉각 실행에 돌입했다. 핵심은 바로 병뚜껑이었다. 전 세계 생수병 뚜껑의 결착 사이즈는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100% 동일하다. 김 대표는 이 같은 병뚜껑에 차 재료를 부착하면 쉽게 음료를 마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장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 대표는 또 한 번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그동안 어느 누구도 ‘병뚜껑 모양의 티백’이라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상품화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없는 제품을 선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김 대표의 의욕은 불타올랐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병뚜껑 티백을 만들 수 있는 설비가 전무했다. 김 대표는 곧장 일본으로 넘어가 저렴하게 플라스틱 사출(플라스틱 원료를 녹여 틀에 주입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 설비를 구매했다. 그리고 병뚜껑 티백을 사출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 그 과정에서 김 대표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김 대표는 말한다. “티백에는 차의 재료를 담는 부직포 재질의 봉지가 필수입니다. 이를 병뚜껑에 부착하려면 접착제가 필요했죠. 그런데 사람의 입이 닿는 부분에 화학 접착제를 사용하면 건강에 좋을 리 없잖아요.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으려면 플라스틱 용기와 부직포를 함께 사출해야 했습니다. 언뜻 쉬울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았죠. 수백 번의 테스트를 거쳐 마침내 용기와 부직포를 함께 사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말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지난해 말 병뚜껑 티백의 개발을 마친 김 대표는 곧장 티백에 들어갈 차 원료 수급에 돌입했다. 원료의 첫 번째 기준은 ‘유기농’이었다. 이는 네팔에서의 경험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다. 김 대표는 “네팔에서 히말라야 차를 접하며 느낀 점은 유기농 차는 단순한 ‘차’가 아니라 ‘생약’이라는 것”이라며 “합성첨가물이 없는 유기농 원재료를 사용하는 차만이 진정한 ‘좋은 차’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시판 중인 대부분 냉차에는 합성첨가물이 포함돼 있다. 사실상 ‘차 음료’가 아닌 ‘합성 가공음료’라는 것이다. 또 기존 제품은 고온 살균처리 과정에서 영양소가 파괴되는 단점도 있다. 김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차가운 물에서도 차 고유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추출 노하우를 제품에 적용했다.
두 번째 기준은 ‘맛’이었다. 세밀한 시장 분석을 해야 할 법하지만 의외로 이 문제는 빠르게 해결됐다. 그의 사업가적 감각 덕분이었다. 김 대표는 말한다.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린이, 남성, 여성, 노년층으로 소비자 카테고리를 나눠 그들이 가장 좋아할 법한 차를 생각해봤죠. 어린이는 맛있어야 먹습니다. 맛있는 차, 보리차가 ‘딱’이었죠. 남성들은 음주 탓에 헛개차를 많이 마시죠. 그래서 헛개차를 택했어요.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에게는 우엉차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노년층의 경우 당뇨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뇨에 좋은 식재료로 각광받는 것이 바로 돼지감자입니다. 거기에 기본적인 옥수수차를 더해 총 5개의 제품 라인업이 탄생했죠.”
지난해 말 김 대표는 마침내 생수 병뚜껑 모양의 티백 제품인 ‘티업’ 을 선보였다. 먼저 주요 온라인 마켓에 제품을 등록했다. 주문이 폭주했다. 무엇보다 호평 일색인 소비자들의 구매후기가 고무적이었다. ‘건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진정한 대박 아이디어다’, ‘왜 이제야 제품을 내놓았느냐’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미소 짓던 김 대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제품을 구매하면 어디서 주문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국내 대형 차 기업과 제약회사가 저희 제품을 다량으로 구매했어요. 기존에 볼 수 없던 제품 형태에 관심을 가진 듯 보였죠. 최근에는 저희 제품을 구매했던 대형 기업들이 먼저 연락해 티업과의 제휴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스타트업은 인력 및 자금 부족으로 홍보·마케팅에 취약하다. 티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김범수 대표에게 큰 기회가 찾아왔다. KBS의 농수산 기반 스타트업 경연 프로그램 ‘나는 농부다 시즌2’에 출연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티업은 900대 1의 지역 예선을 뚫고 본선에 진출해 최종 순위 5위를 차지하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당시 톱5에 오른 기업 중 식품 기반 스타트업은 티업이 유일했다. 물론 방송의 영향으로 티업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티업은 해외 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가장 큰 차 시장인 중국이 핵심 타깃이다. 티업은 최근 중국 대표 온라인 메신저 ‘위챗’ 플랫폼 내 온라인 마켓에 약 2억 개의 제품을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개가를 올렸다. 김 대표는 말한다. “중국뿐 아니라 다도(茶道) 문화가 발달한 영국 등 유럽 시장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병뚜껑 티백이 글로벌 차 시장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상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지금 제 머릿속에는 또 다른 아이디어 상품 하나가 있습니다. 조만간 세상을 놀라게 할 저희 티업의 제품에 주목해주세요.”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