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수록 변명 같아지니까 이쯤에서 포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BL 만화 특집인 거 아니냐구요? 그건 정말 아닙니다!!!!
오늘의 취미생활 품목은 일본 만화가 이마 이치코와 요시나가 후미입니다. 왜 둘을 싸움 붙이듯 제목에 붙여놨냐구요? 별 뜻은 없습니다. 그냥 같이 다뤄보고 싶었을 뿐(…)
일단 이마 이치코 작가의 소장샷입니다. 다른 작품들은 그렇다 쳐도 대표작 ‘백귀야행’은 현재 24권까지 발간된 상태. 너무 권수가 많아서 작품당 한 권씩만 뽑아 찍어봤습니다. 사진의 퀄러티는 떨어지지만 요렇게 모아서 찍어보니 감개무량하네요.(와우~~)
백귀야행은 은근히 오싹한 작품입니다. 죽어서도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귀신, 혹은 자꾸만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나 요괴 같은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작품 전반에 망자의 아득한 그리움 같은 정서가 깔려 있습니다. 공포물답게 가끔 상당히 섬뜩한 연출도 등장해 줍니다. 로맨스 따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죠.
다만 주의깊게 읽지 않으면 마지막 장까지 가서도 뭔 얘긴지 잘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럼 해당 화의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곤 하죠. 정확히 무엇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중요한 장면이나 대사에 충분히 방점이 찍히지 못한 느낌인데요. 백귀야행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선 이마 이치코 작가의 특징이겠거니 하고 넘기게 됐죠.
그리고 작화 붕괴 수준까진 아니지만 그림체가 매우 한정적이라 가끔 인물 A와 B가 헷갈리구요(위의 표지들을 보면 이미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그림체뿐만 아니라 인물 묘사도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환월루기담’, ‘키다리 아저씨의 행방’, ‘나의 다정한 형’, ‘낙원까지 조금만 더’, ‘홈리스 샐러리맨’, ‘B급 미식가 클럽’에 등장하는 남×남 커플들을 보면 역시나 엇비슷합니다. 무뚝뚝하고 무신경해 보이지만 사실 내 남자에겐 한없이 따뜻한 연상남, 그리고 순진한 연하남 커플들이죠.
이런 BL물들을 보면 사실 순정만화의 구도와 큰 차이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일부 동인녀(…)들은 BL물에 집착하는 걸까요? 그냥 잘생긴 남자들이 두 배로 더 나와서? 그렇게 따지면 ‘꽃보다 남자’ 같은 순정만화엔 여주인공 좋다는 훈남들이 한 트럭씩 등장하지 말입니다.
그보다는 남×남 커플의 로맨스는 정말 순수한 판타지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수의 순정만화에선 흔하디 흔한 평범녀가 초 훈남과 맺어집니다. 역시 평범녀인 저도 만화 속 평범녀에 마구 감정이입을 하며 읽다가도! 결국 만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게 되죠. 그리고 종종 순정만화 속 남녀관계는 그닥 평등하지 않을 때가 있죠. 하지만 남×남 커플이 출동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국내 출판된 이마 이치코의 만화 중 제가 왠지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책이 바로 ‘뷰티풀 월드’입니다. 작가의 소소한 평론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발레 ‘백조의 호수’, 영화 ‘벤허’, 일드 ‘파트너’, 한국영화 ‘왕의 남자’, 혹은 작가의 일상을 통해 유감없이 동인녀만의 시각을 선보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작가가 무슨 생각을 했냐면요.
그래도 이마 이치코의 BL물은 상당히 얌전합니다. 19금 묘사도 별로 없고 남녀…가 아니라 남남 관계도 상당히 담백하죠.
반면 요시나가 후미는 좀 찐합니다. 대사나 19금 장면 모두요. 그리고 남남 관계도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막 애증도 뒤얽혀 있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BL물로서의 강도가 더 높은데도 제가 요시나가 후미를 좋아하는 이유는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는 스토리 구성 때문입니다. ‘서양골동양과자점’이 실제로 일드, 한국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죠.
어렸을 적 어둠의 경로(반성하고 있습니다)로 접했던 요시나가 후미의 단편집들도 좋았습니다. 다양한 인물과 인간 관계가 등장하고 이야기마다 흡입력이 있죠. BL물이지만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는 자전적 맛집 일기라고 할까요. 작가의 맛집 기행을 그린 만화인데 역시 재미있습니다. 작가는 남자보다도 미식을 사랑하는데, 맛과 음식에 대한 묘사가 참으로 실감이 납니다. 책에서 소개된 도쿄의 식당 중 한 군데는 저도 실제로 가봤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2×세 사회생활 초년병이었던 그 땐 만화처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마 이치코의 ‘뷰티풀 월드’나 ‘사랑이 없어도…’는 모두 작가 자신을 소재로 삼은 자전 만화인데 이런 책은 저는 거의 꼭 삽니다. 이게 상당히 재미지거든요. 또 다른 사례로는 이토 준지의 ‘고양이 일기 욘&무’, ‘노다메 칸타빌레’로 유명한 작가 니노미야 토모코의 19금 음주 일상을 담은 ‘음주가무연구소’가 있습니다. 두 책 역시 저의 소중한 콜렉션에 포함돼 있죠.
마지막으로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부모님과 같이 살 적에 제가 만화책을 읽고 있으면 가끔 엄마가 중얼거렸습니다. “나도 어렸을 땐 그렇게 만화책 좋아했는데….” 엄마의 취미가 저 때문에 똑 끊긴 것 같아 미안하고 안쓰러웠더랬죠. 효도해야겠어요(읭?). 독립한 3×세의 저는 아직도 만화책을 사 모으며 엄격 근엄 진지하게 취미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참 행복합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생활의 활력소, 꼭 챙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