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받은 공직사회의 충격보다 중요한 것은 공직자마저 흔들리면 국가적 위기가 번진다는 사실이다. 통상 압력에 대한 대응이나 가계부채 관리 등 당장 필요하고 정치적 논란 없는 경제정책에 집중하며 새 정부 출범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청와대 경제수석은 “주인 없는 조직일수록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에 빠질 위험이 높다”면서 “공직사회마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역사적 사명을 갖되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책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검찰 기소 내용은 공직사회, 특히 엘리트 부처를 자처한 기획재정부 내부를 뒤흔들었다. 조 전 수석의 비극은 그가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승진한 지난 1999년부터 씨앗이 잉태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강봉균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이 조 전 수석의 능력을 높이 평가, 고참 선배들을 제치고 국장급인 정책조정심의관에 발탁하자 재경부 내에 반발심이 일었고 이후에 조 수석이 외부로 갔다 기재부로 돌아오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됐다”고 토로했다.
이후 조 전 수석은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에 입성했는데 당시 고교동창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과 인연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정 전 의원은 이후 회고록에서 능력만 보고 그를 발탁했지만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정 전 의원이 이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조 전 수석의 입지도 좁아졌다. 그는 기재부로 돌아가지 못하고 총리실 등에서 근무하다 2010년 8월 세종시 수정안이 폐기되며 옷을 벗었다.
그런 그가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첫 경제수석으로 기용되면서 주변에서는 절박감이 커졌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조 전 수석과 동문인 한 경제관료는 “정무직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올라갈 수도, 나갈 수도 있는 자리”라면서 “참모가 대통령에게 반박할 수 없는 박근혜 정부로 들어오면서 부당한 지시라도 이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던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법적으로는 부당하거나 위법한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징계하거나 해임할 경우 공직자가 소청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 심증만 있지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구제받기는 어렵다.
현재 관료 시스템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하기 때문에 정무직에는 자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운영의 문제라는 결론으로 돌아온다. 차기 대권주자들이 참모진과 소통할 수 있는 지도 중요하게 봐야 할 덕목이 된 것이다.
12일 여야 3당은 탄핵정국 수습과 민생안정을 위한 여야정 협의체 운영에 합의했다. 하지만 친박·비박으로 나뉜 여당의 파열음은 갈수록 커지고 있고 야당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대거 되돌리겠다며 강공을 취할 태세에서 여야정 협의체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지 의문인 상태다. 만약 대선을 겨냥한 정치권의 외풍이 권한대행 체제에 휘몰아친다면 관료사회가 중심을 잡고 국가를 운영해나가기는 어렵다. 또 고위직을 중심으로 내년 대선 주자들에게 줄을 서는 모습들도 예상된다.
내년 경제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안정적으로 국가를 끌고 가기 위해서는 정치권에서도 정책이나 행정에 대한 과도한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임이 확정된 유일호 경제팀에는 가계부채나 통상 압력 최소화 등 현안부터 챙겨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구조조정이나 4차 산업혁명 등에 대한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문도 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또 근본적으로 관료들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제국 인사혁신처 차장은 “미국의 경우 제도로는 공직자의 자리가 보장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전문성이 인정되면 정권이 바뀌어도 자리를 지키는 공직자가 많다”면서 “공직자의 계급이 아니라 전문성으로 지위를 인정받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