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각을 ‘가질리어네어(gazillionaire)’로 불리는 초갑부들로 채우면서 트럼프의 부자 내각이 미국의 대내외 정책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공직 경험이 전무한 월가와 기업 출신 인사들이 행정부 요직을 이끌면서 국정이 단기 수익성 위주로 운영되고 빈부격차 해소 등 국가의 큰 그림은 뒷전으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을 비롯해 장관 지명자들이 정부 규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만큼 규제개혁에 적극적이지만 지난 2008년 금융위기 같은 또 다른 경제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12일(현지시간) 게리 콘(56) 골드만삭스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 지명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는 부처 수장이 거부들로 채워지는 데 대해 미 언론의 비판이 커지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콘은 한 해 2,2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려온 월가의 대표적 고액 연봉자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부자 각료들의 재산 합계가 120억달러(14조원)를 넘어섰다고 보도했으며 NBC방송은 이들의 자산이 최대 145억달러(약 17조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상무장관 지명자인 윌버 로스 전 로스차일드 회장의 재산이 29억달러(3조4,000억원)를 넘고 골드만삭스 출신 재무장관 지명자인 스티븐 므누신의 재산도 4,600만달러(53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웨이로 대표되는 미 최고 부자 가문 중 한 곳인 디보스가문의 며느리인 벳시 디보스 교육장관 내정자는 부부 재산이 51억달러에 달한다. 내각 수장인 트럼프의 재산도 30억~45억달러에 이르며 중소기업청장에 지명된 린다 맥마흔 역시 프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를 운영하며 자산이 10억달러를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장관에 지명된 앤드루 퍼즈더는 패스트푸드 하디스와 칼스주니어 등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내며 억만장자의 부를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트럼프는 최근 이 같은 부자 내각에 대한 비판에 “나는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을 원한다”면서 “재능 있고 영리한 그들이 1년에 1달러를 벌기 위해 거액의 수입을 포기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내각을 구성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월가와 재계 출신 장관 지명자들은 트럼프노믹스의 핵심인 부자 감세와 규제개혁의 선봉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미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고 환경규제 철폐를 주장한 인사들이 각각 노동장관과 환경보호청장에 지명되자 “마약왕을 마약단속국장에 임명했다”는 풍자가 나올 정도다. ‘골드만삭스 동문회’가 재무부와 백악관 경제 포스트를 점령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강화됐던 금융규제들도 대폭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기업 경영자나 금융인 출신 각료들이 단기적 이익과 비용 절감에만 급급해 고용과 투자 확대에 도움이 될 안정적 경제운용은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트럼프 당선인이 포드·캐리어 등 미 기업의 해외 공장이전을 막으며 “수천 개의 일자리를 지켰다”고 주장한 데 대해 “그런 단발성 정책이 일자리를 되돌릴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