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아침에] 심판은 했지만 代案은 숙제로 남았다

온종훈 논설위원

제왕적 대통령제 손질 필요한데

개헌 등 제도 혁신 논의도 못해

정치적 이해타산 함몰된 여야

미래 위한 대안 공론화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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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첫 여성 대통령을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에 대한 준비와 고민은 없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다 돼가던 2014년 말쯤 친박근혜계 원로 정치인에게 들은 말이다. 두 번의 대선 캠프(경선포함)에 합류해 대선 승리의 공로가 있지만 권력 중심에서 멀어져 있던 그는 차마 기자에게 직접적으로는 못하고 우회적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당시는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던 시기였다.


박 대통령은 불과 2년여 만에 그와 유사한 의혹으로 사상 두 번째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되는 사태를 맞는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촛불 민심의 도가 훨씬 거셌고 국정개입의 주체가 정윤회의 전처인 최순실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 언론의 끈질긴 추적 보도로 사실관계와 출연진이 이전보다 훨씬 보강됐다. 그럼에도 본질은 변한 것이 없다. ‘농단(壟斷)’이라는 말로 국정개입의 강도가 높아졌고 반전을 노렸지만 국민의 분노만 순차적으로 가중시킨 세 번의 대국민 담화가 있었을 뿐이다. 이 친박 인사의 말처럼 이번 사태의 교훈은 명확하다. “준비 안 된 권력은 언젠가는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가결로 5년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되던 대통령 선거 정국의 시간표는 빨라졌다.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빨리 끝날 경우를 전제한 ‘벚꽃 대선’은 불과 3~4개월밖에 남지 않았고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확정하고 박 대통령이 동의한 4월 퇴진을 기점으로도 6개월여 정도에 불과하다. 차기 대통령은 통상적인 정권인수 기간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내년 여름쯤 우리는 새 대통령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해진 셈이다.


‘선택 2017’이라 불릴 차기 대선은 그러나 쉬운 과제가 아니다. 일단 이번 사태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 제기, 즉 개헌은 이제 이제 여의도 정치권을 넘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필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비단 박 대통령의 탄핵까지 이어진 최순실 사건이 아니더라도 지난 1987년 이후 뽑힌 6명의 대통령은 하나같이 친인척과 측근 비리로 불행한 임기 말을 보낸 사실만 보더라도 1987년 체제는 이미 유효성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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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개헌)는 항상 사람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대선 주자군이라는 사람들도 각자의 정치적 위치에서 개헌 문제를 얘기한다. 대권을 잡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생각하는 주자들은 현 대통령제의 유지를 얘기하고 그렇지 않은 쪽에서는 대체로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권의 얘기일 뿐이다. 오히려 유권자들의 의견은 그야말로 백인백색(百人百色)일 정도로 복잡하게 엇갈린다. 길어봤자 6개월여에 불과한 차기 대선에 앞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이렇게 꼬여 있고 복잡하다.

대선이 있는 해에도 한 해 내내 걸리던 후보와 지지 정당·정책의 검증 과정이 절반 이하로 줄었음에도 우리 사회는 대안 체제와 인물에 대한 논의를 시작도 못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선택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지금이라도 대안 찾기 과정을 공론화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헌재 탄핵심판 이후를 얘기하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확정되면 불과 60일 안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 것이 현행 헌법이 정한 엄연한 절차다.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게 한 1등 공신은 촛불 민심이다. 사상 최대 규모인 연인원 745만명(경찰 추산 152만명)이 지난 7주간 거리로 몰려나왔다. 탄핵 가결 후인 지난주 말 기세가 다소 꺾이기는 했지만 매주 기록을 경신할 정도였다.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의 비주류까지 모두 촛불 민심을 거론하면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탄핵안 가결에 나섰다. 그러나 그것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운영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일 뿐이다. 시간이 없다. 이제 미래와 대안을 얘기해야 할 때다.

jhohn@sedaily.com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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