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으로 왔기 때문에 부채가 없습니다.” “저는 전문성을 갖고 있습니다. 성공한 낙하산이 될 것입니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친박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 저는 친박…저는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전현직 국책은행장들의 발언이다. 두 은행장 모두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낙하산 최고경영자(CEO)다. 불행하게도 최근 국책은행 직원들 사이에서는 낙하산 CEO에 대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CEO’가 왔으면 한다는 자조 섞인 푸념까지 나온다. 국책은행에 대한 이해가 없는 CEO들이 짧은 임기 동안 여러 일을 벌이려다가 더 일이 꼬인 경험이 많아서다.
국책은행의 비극은 검증이 안 된 낙하산 인사에서 초래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은행의 경우 민유성 전 산은 행장 시절부터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까지 터져 나왔다. 민유성·강만수·홍기택 전 행장은 각각 민간 금융회사, 관료, 교수 출신으로 모두 각 분야에서 나름의 전문성을 인정받았던 인물들이지만 결국 산은에는 오점만을 남겼다.
특히 경기가 급속히 악화되며 국책은행의 주요 역할로 기업 구조조정을 맡았지만 낙하산 CEO인 비전문가에게 맡겨진 구조조정은 끊임없이 삐끗댔다.
강 전 행장은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로 자회사의 관리 감독은커녕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의 비리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지인이 운영하는 부실업체에 거액의 투자를 종용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강 전 행장에 이어 민 전 행장 역시 검찰 수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서별관회의 사태를 촉발한 홍 전 산은 회장도 낙하산 인사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홍 전 회장은 구조조정 실책을 두고 책임론을 야기하면서 국책은행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 전 회장은 “(대우조선 지원은) 청와대, 기획재정부, 금융 당국이 결정한 행위로 애초 시장 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으며 산은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주장하면서 국책은행 수장이 스스로 국책은행의 한계를 만천하에 인정한 꼴이 됐다.
국책은행은 이렇게 구조조정 등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 많은데다 금융 당국과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낙하산으로 온 CEO의 폐해는 더욱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현재 산은법과 수은법상 정부의 입김을 차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CEO가 낙하산으로 오면 정부 입김에 휘둘릴 공산이 더욱 크다. 산은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는 “현행 산은법상 (정부의 간섭을) 차단할 수 없다. 정부는 주인이고 산은은 대리인이다. 현재는 정부 입김 차단은 불가능하고 법상 허용되지도 않는다”면서 현행법상 산은의 한계를 밝히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급적이면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국책은행 CEO가 필요한데 전문성이 떨어지는 낙하산 인사가 올 경우 정부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학계에서는 국책은행 낙하산 CEO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금융회사의 집행임원이나 감사가 되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금융회사 근무 경력 3년 이상을 요구하는 금융기관 근무이력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 역시 이해관계 상충으로 지지부진하고 있다. /김보리·조권형기자 bor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