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이주열 "재정정책 시대인데...내년 예산 '확장' 아니다"

"통화정책은 리스크 관리에 역점"...재정역할 확대 주문

유일호 부총리와 '정책공조' 논의 닷새만에 서로 딴말

전문가들 "경기 고꾸라지는데 책임 떠넘기기만" 지적

유일호(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오른쪽)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호재기자유일호(가운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오른쪽)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갈수록 약발이 떨어지는 경기 부양의 총대를 누가 메느냐를 놓고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두 거시경제 사령탑 사이의 신경전이 한층 날카로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선공은 이 총재가 날렸다. 그는 “통화정책 시대가 가고 이제 재정정책의 시대가 왔다”며 재정의 역할 확대를 주문했고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는 내년 예산에 대해서도 “확장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불과 닷새 전 유 경제부총리와의 만찬 회동에서 ‘정책조합(Policy mix)’을 얘기했던 것과도 톤이 크게 바뀌었다. 또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금리 인하 주장과 관련해 금융 리크스 관리가 더 시급하다며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21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출입기자단과 송년 간담회를 갖고 “4% 내외 명목성장률과 비교해볼 때 총지출 증가율이 낮다”며 “내년도 재정정책은 완화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내년 예산안의 정부 총지출은 400조5,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과 비교하면 3.6%, 추경 예산안까지 포함하면 0.6% 늘어난 것이다. 내년 정부의 총수입은 414조3,000억원으로 올해와 비교하면 5.9%가 늘어난다. 한국은행이 지난 10월 내놓은 경제전망에 따르면 내년 우리나라 명목 성장률은 4.7%(성장률 2.8%, 소비자물가 1.9%)다.


이 총재는 “국내 기관뿐 아니라 해외 신용평가사, 해외 금융기관들도 한국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재정정책의 여력을 꼽는다”며 “재정정책이 더 많을 역할을 해야 할 때라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자문이 올해 1월 발간한 책 ‘마을의 유일한 게임(The Only Game in Town)’을 인용하며 “제로(0)금리, 양적 완화, 그리고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로 대변되는 요란한 통화정책의 시대가 가고 이제 재정정책의 시대가 온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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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한편 통화정책은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책당국이 우선을 둬야 할 것은 취약 부문의 리스크 관리다. 지금 한국은행은 거시경제, 금융안정에 대한 리스크 관리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과거 금리 인하에 대해 “거시경제 리스크가 금융안정 리스크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금리 인하는 불가피했다”면서도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클 때는 조금 더 확인하고 다져가면서 (통화) 정책을 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경기가 돌발적인 요인으로 급격히 하강하지 않는 한 금리 인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의 강경한 발언은 16일 두 경제 사령탑이 11개월 만에 만나 정책협력을 강조한 지 불과 닷새 만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당시 유 부총리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긴밀한 협조, 폴리시믹스가 중요하다”며 정책공조를 강조했었다. 또 이 회동 사흘 뒤인 지난 19일 송언석 기재부 2차관은 “이번 정부를 마무리할 때까지 국가채무비율을 40% 미만으로 관리하겠다”며 재정 확대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고꾸라지는 게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재정·통화당국이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약간 하강하는 정도가 아니고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라며 “재정당국은 통화정책을, 통화당국은 재정정책을 얘기하기보다 어떻게 정책조합을 해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지 총체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총재는 내년 경기와 관련해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도널드 트럼프 신정부의 성장 친화적 재정확대 정책과 거기에 따른 금리 상승, 보호무역주의, 예상치 못했던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경제심리 위축 등을 종합해서 보면 하방 리스크가 좀 더 크다”며 “올해 4·4분기 성장 실적치를 모니터링한 후 내년 1월에 전망치를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한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보고를 통해 2.8%였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것임을 밝혔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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