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약대 편입제' 폐지론 확산…애꿎은 학생들만 피해

"PEET 고시 낭인 양산 등

2+4학제 부작용 너무 많다"

35개 약대 중 33곳 폐지 찬성

"학생 이탈로 인재양성 차질"

자연대도 6년제 전환 건의

편입 준비 학생들만 혼란

교육부 "의견수렴해 결정"



폭넓은 교양과 지식을 겸비한 약학 인재를 키우자는 취지로 시작된 약대 편입제도, 이른바 ‘2+4 학제’가 도입 5년도 안 돼 흔들리고 있다. 대다수 약대가 폐지를 주장하고 있고 자연과학대학, 재학생들도 이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대 편입제가 본래의 취지는 못 살리면서 폐해만 극심하다’는 이유인데 흔들리는 교육 제도로 학생들의 혼란만 커지고 있다.

22일 한국약학교육협의회(약교협) 관계자는 “최근 설문조사 결과 35개 약대 가운데 33곳이 약대 편입제 폐지에 찬성했다”며 “2+4 학제의 폐해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약대 편입제 폐지에는 약대는 물론 자연과학대학도 강력히 찬성하고 있다.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는 지난 10월 약교협과 함께 약대 편입제를 폐지하고 통합 6년제로 전환할 것을 교육부에 건의했다. 통합 6년제는 수능 입시로 한 번에 약대에 입학해 6년을 배우는 학제다. 협의회는 “많은 자연과학계 학생이 약대 편입에 쏠리면서 대거 이탈하고 있어 기초과학 인재 양성에 비상이 걸렸다”고 주장했다. 약대 재학생 모임인 전국약대학학생협의회(전학협)도 13일 학생 77.3%가 통합 6년제로 학제를 바꿔야 한다는 설문조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의 약대 입시는 전공 상관없이 2년 동안 대학 생활 마치고 약대입문자격시험(PEET)에 응시해 약대에 편입하는 방식이다. 원래는 대학 입시로 한번에 약대에 들어가 4년 동안 다니는 제도였으나 노무현 정권 때 지금 방식이 도입돼 2011년부터 시행됐다. 시행 초기부터 조금씩 불만이 흘러나오던 것이 최근 들어선 그야말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교육부에서는 신중한 입장이지만 약학계에서 폐지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갈 계획인 데다 국회에서도 법 개정 움직임이 있어 입시 제도 전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약교협 관계자는 “전체 약대 학장 공동으로 폐지 찬성 성명 발표, 약대·자연과학 재학생 서명, 법 개정 활동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의 핵심에는 편입 시험, 즉 PEET가 있다. 조효신 약교협 사무국장은 “경쟁률이 10대1에 이르면서 ‘PEET 고시 낭인’들이 양산되고 대다수 약대 준비생들이 따로 PEET 사교육을 받으면서 연간 1,000만여원에 이르는 별도 학비 부담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PEET 합격에만 2~3년이 걸리다 보니 편입에 성공해도 졸업이 늦어지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나이가 많은 졸업생들이 도전보다 안전을 선호해 ‘대학원→연구직’보다 약사를 진로로 선택하는 경향이 커졌다. 약교협에 따르면 약대생의 대학원 진학률은 2010년 20.1%에서 지난해 13.2%로 급감했다. 전인구 한국약학교육평가원 이사장은 “지금 같은 추세가 계속되다가는 고급 연구 인력 양성을 통한 제약바이오 산업 발전이라는 국가 목표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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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전공을 공부한 학생을 약대에 받아들여 융합형 인재를 키우자’는 제도 취지가 실현됐다면 이 모든 부작용을 상쇄할 수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물음표다. 양태희 전학협 회장은 “PEET를 준비하느라 많은 학생이 1~2학년 때 전공 공부를 제대로 못하는 데다가 전공에서 배운 내용이 약대에 들어가면 무용지물이라는 의견도 많다”고 전했다.

약대 편입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교육 정책의 실패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의 기본적인 교육제도 철학은 ‘다양한 소양과 지식을 가진 사람을 전문직 인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약대 편입제는 물론 로스쿨·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들 제도는 10년도 안 돼 강한 비판에 부딪혔다. 의학전문대학원은 사실상 폐지됐고 로스쿨도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이 거세다. 노무현 정부의 교육 실험은 ‘한국 실정에 맞지 않다’는 결론으로 가닥이 나고 있는 모양새다.

오락가락하는 교육 제도로 인한 피해는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약대 편입을 준비하고 있는 한 생명공학대 대학생은 “약대 편입 제도 폐지 얘기가 나오면서 혼란스러워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그렇게 문제가 많은 제도라면 사전에 제대로 검토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약대 편입제에 문제가 많다는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있으며 좀 더 많은 의견 수렴을 통해 제도 개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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