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스미스 이전의 스미스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과 신산업 발굴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을 위한 경제 대책으로도 손색이 없는 이 처방은 수백년 전에 나왔다. 누가 어디에서 이렇게 제언했을까. 주인공은 토머스 스미스(Thomas Smith). 1549년에 펴낸 ‘영국 왕국의 공공복지에 관한 대화’에서 경제 위기를 타개하는 해법으로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의사와 기사·상인·수공업자·농부들의 대화 형식으로 출간된 이 책의 주제는 인플레이션과 엔클로저 현상(농지의 목초지화, 고수익을 원하는 지주들이 소작인들을 쫓아내고 목장을 만드는 통에 ‘양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16세기 중반 이후 급등하기 시작한 밀 가격의 변동을 주로 다뤘다. 토머스는 물가 상승기의 실질적인 소득 수준을 따지며 물가 상승, 실질 소득 감소의 요인으로 신대륙으로부터 도입된 금과 은을 꼽았다. 화폐공급량의 증감과 물가 등락이 정비례한다는 화폐수량설의 개념을 더듬었다고 볼 수 있다. 스미스는 또한 당시 영국 국왕들이 대외 전쟁용 자금 마련을 위해 금화와 은화에 구리를 섞어 화폐의 질을 떨어트리는 행위에 대해서도 우회적인 비판을 보냈다.

스미스는 1513년12월23일 하급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20세부터 모교인 케임브리지대의 자연철학 강사로 일했던 인물.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유학해 파도바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귀국 후 교단에 복귀한 스미스는 다양한 분야를 오갔다. 모교의 학장과 의회 의원, 프랑스 대사와 국무장관을 지냈다. 영국 국교회 신도였던 그는가톨릭으로 돌아가려던 메리 여왕 재임기를 제외하고는 출세 가도를 달렸다.


사망(1577년) 이후 유고를 모아 출간된 그의 저서 개정판에는 ‘사람들은 이기심에 따라 행동한다’는 대목도 나온다. 훗날 이기심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며 ‘꿀벌의 우화’을 지은 버나드 맨더빌도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스미스의 통찰력은 또 다른 스미스에게 이어졌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는 ‘우리가 빵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집과 푸줏간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이기심 때문’이라는 구절도 원형이 바로 로버트 스미스다. 국부론보다 227년 앞서 그 핵심 내용을 설파한 것이다.

관련기사



도덕철학 교수이자 외교관이었던 그는 임금 현실화와 자유무역을 옹호한 선구자로도 손꼽힌다. 당시 영국의 최대 문제점인 엔클로저 현상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쟁기 끄는 농부의 이윤율을 목축업자 및 목양(牧羊) 농장 경영자의 이윤율만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목초지가 농지를 잠식할 수 밖에 없다.’ 스미스는 해결책으로 목양업 자체를 규제하기 보다 그 수익성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구체적인 해결책으로 양모 수출의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입 양모에 대한 관세를 내리거나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애덤 스미스와 차별점도 없지 않다. 로저 백하우스 버밍엄대학 경제학과 교수의 ‘지성의 흐름으로 본 경제학의 역사’에 따르면 그는 중상주의적 정책을 선호했다. ‘불필요한 사치재나 영국산 원료로 만들어진 재화의 수입은 결국 영국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넘어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도 닿는다. 고가의 수입품과 해외여행, 중국산 제품이 저가 소비재를 넘어 가전제품과 스마트폰까지 잠식하는 현실을 콕 집어 얘기한 것 같다.

스미스의 통찰은 근대를 여는데 이바지했다. 로저 백하우스 교수는 그를 경제학의 마키아벨리로 여긴다. ‘신의 뜻’보다 인간 세상의 정치 현실을 중시했던 마키아벨리처럼 로버트 스미스는 경제와 상업활동을 종교나 도덕의 잣대로 해석하려 했던 중세의 관성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의 시각으로 풀이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 이전의 스미스’로 불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중세적인 도덕 관점에서 벗어나 경제를 자연 현상으로 보려는 그의 관점은 17세 이후 상업과 교역이 발달하는데 이바지했다. 사람들은 죄 의식 없이 상업활동에 나서고 부를 쌓았다. 스미스가 말한 대로 활발한 상업활동을 통해 일자리도 많이 생겼다. 일자리 창출과 신산업 발굴 육성이라는 스미스의 해법은 오늘날 경제난국을 푸는 데에도 유용하다. ‘창조’하기보다 배우는 게 먼저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