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창업의 불씨 살리려면

거세지는 4차산업혁명 물결

정부 의욕만으로는 대응 한계

네거티브 방식 등 규제개혁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해야

오철수 성장기업부장


“그동안 박람회장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경우는 처음입니다. 박람회를 한다고 하면 상담하느라 정신이 없어야 하는데 오전 내내 상담 한 번 해보지 못했어요.”

지난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창조경제박람회 행사장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연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정부가 행사비를 지원해준다기에 3년여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 참가신청을 했지만 분위기가 너무 썰렁했던 것이다. 제품 판매를 하려면 국내 유통업체나 해외 바이어들이 많이 찾아와야 하는데 행사장에는 견학 나온 학생들만 가득했으니 성과가 있을 리 없었다.


창조경제박람회는 한 해의 창조경제 관련 성과물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자리다. 이런 점을 감안해 정부는 4년째를 맞는 이번 행사에 33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1,687개의 기관·기업과 718개의 벤처·스타트업을 참여시켰다. 참가업체와 투입 예산 모두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나오면서 박람회 분위기는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박근혜 정부 국정 키워드인 창조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전국 17곳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었지만 점점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 가운데 판교와 대전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활동이 미미하다. 서울과 대전·경기·전북·전남 등 지자체들도 내년 창조경제혁신센터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센터에서는 센터장 공모를 해도 지원자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창조경제의 열기가 급속도로 식고 있는 것은 정권 말기에 관심이 떨어진데다 탄핵정국까지 겹친 영향이 크다. 정권 초기에는 기업들의 등을 떠밀어 사업을 추진했지만 탄핵정국 속에 정부의 추진력이 떨어지다 보니 지자체와 일반 기업들의 관심도 시들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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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덧붙여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있다. 5년 임기의 정부가 모든 것을 챙기겠다는 과욕이 바로 그것이다. 창조경제센터만 해도 정부는 지역의 창업 수요나 자원 등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창업에 있어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같은 전문 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지역에는 그런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여건 속에서 센터가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투입한 1조원에 가까운 준조세가 허공에 뜰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과거 정권에서도 정부가 의욕만 앞세워 무리하게 일을 벌였다가 임기가 끝나면서 흐지부지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노무현 정부 때 금융 허브 전략이 그렇고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창업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까. 무엇보다 민간기업이 마음 놓고 사업을 펼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화두로 부상하는 4차 산업혁명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이런저런 규제에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헬스케어 산업이 대표적이다. 헬스케어는 고령화와 웰빙 바람을 타고 시장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의료계의 눈치를 보느라 헬스케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원격의료조차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드론과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기기 등과 관련해서도 미국과 중국 등은 몇몇 규제만 빼고 모두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시행하면서 창업 붐이 불같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하려면 사전에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신산업 출현이 더딜 수밖에 없다.

세계는 지금 창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4차산업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조선 등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경제가 돌파구를 찾으려면 4차산업에서 붐이 일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모든 것을 다 컨트롤하려고 하기보다는 민간기업이 마음 놓고 사업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csoh@sedaily.com

오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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