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회계법인의 임원 직함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른바 ‘우병우 친척 방지법’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우병우(사진) 전 청와대 민정수석 6촌형 우병삼씨가 회계사가 아닌데도 삼도회계법인에서 부회장 직함으로 활동한 사실이 지난 7월 드러난 게 계기가 됐다. 삼도회계법인은 우병우 전 수석의 가족회사로 알려진 ㈜정강의 외부감사를 맡은 곳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비회계사의 회계법인 내 임원 직함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의 공인회계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30일 밝혔다. 채 의원은 “회계사 자격이 없는 인사가 회계법인에서 고문 업무를 수행한다면서 부회장·부대표 등의 직함을 사용하고 경영 활동을 하는 것처럼 비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앞으로 비회계사가 회계법인을 대표하는 것으로 오인하는 일이 안 생기도록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가족회사 정강을 통해 마세라티 등 고급 승용차를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국회는 고소득층의 탈세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가족회사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내용의 ‘제2의 우병우’ 방지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번 개정안에 담긴 내용은 회계사 1만8,000여명을 대표하는 한국공인회계사회 윤리규정에도 명시돼 있으나 구속력이 낮은 편이다.
공인회계사회는 우병삼씨가 우병우 전 수석의 가족회사인 정강의 외부감사 업무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8월 직함 오용 문제에 대해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공인회계사회는 우병삼씨와 삼도회계법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고 비회계사의 임원 직함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회원사에 내려보내는 것으로 일단 사안을 마무리했다. 회계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인회계사회와 회계법인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회계 바로 세우기 특별위원회’에서 관련 내용을 논의한다고 발표했지만 우병삼씨 사건으로 촉발된 비회계사의 직함 오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별다른 개선안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형 회계법인은 그동안 고위 관료·정책 금융기관·금융사 출신 인사를 고문 자격으로 영입하되 부회장·부대표 등의 직함을 부여하고 급여를 지급하면서 일감을 수주하는 데 활용했다. 사실상 이들에게 ‘로비스트’ 역할을 맡긴 것이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대표는 “회계사 자격이 없는 인사들이 회계법인에서 임원 직함을 쓰면서 감사 일감을 따오는 것은 외부감사인이 독립성을 해치는 원인 중 하나”라며 “이들의 로비 활동을 막을 규정의 법제화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