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어른이 웬 퍼즐이냐구요. 노노 그렇지 않아요. 퍼즐은 일과 스트레스와 잔소리와 주택담보대출에 지친 현대의 어른들을 위한 참 좋은 놀이라고, 여러분의 취미 큐레이터인 저는 강력히 주장합니다.
제 침대 머리맡에 놓인 퍼즐 완성본입니다. ‘월리를 찾아라’ 황량한 서부 편이고 총 1,000조각짜리죠. 교보문고 영풍문고 혹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2만원 이하로 살 수 있습니다.
특별히 월리를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왠지 어린 시절 유행했던 월리도 생각나고 북적북적 아기자기 컬러풀한 맛이 마음에 들어서 작년에 우연히 사 봤는데요.
작년 추석 연휴. 시간도 있겠다 어디 한번 조금만 맞춰볼까, 하는 마음으로 퍼즐 조각을 집어든 저는 5시간 동안 1,000조각 퍼즐을 전부 맞춰버리는 기염을 토하고 말았습니다. 5시간 동안 바닥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퍼즐을 맞춘다는 것은 마치 5시간 내내 마늘을 깐다거나 5시간 동안 주저앉아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것과도 비슷하죠. 허리엔 가벼운 초기 디스크 증상이 생길 것이고 무릎 관절이 쑤시며 무엇보다도 목과 어깨가 80대 어르신처럼 굳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5시간 동안 참 즐거웠습니다. 일단 그림이 너무 귀엽습니다. 보통 퍼즐놀이 하면 고전 명화나 스위스 풍경화 같은 그림들을 많이 떠올리실 텐데 특히 이 월리 퍼즐은 참 아기자기합니다.
서부시대가 테마이기 때문에 금광을 찾아 몰려든 수많은 인물들과 서부 마을의 풍경은 물론이고 서부 사나이들의 총싸움이나 당시 도입된 증기기관차 같은 구경거리들도 깨알같이 묘사돼 있습니다. 그런데 맞추다 보면 이 곳은 실제 서부시대가 아닌 서부 영화를 찍기 위해 마련된 거대한 세트장이란 사실을 알 수 있죠.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씩 웃고 있는 월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재미도 재미지만, 일에서는 잘 발휘되지 않던 묘한 근성이 생겨나 끝까지 맞춰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전 어른들에게도 이런 놀이의 미덕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퍼즐, 레고, 나노블럭, 뜨개질, 아직도 꽤 유행인 컬러링북(‘비밀의 정원’류) 같은 놀이는 내 손으로 무언가를 완성하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해 줍니다. 정해진 규칙만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규칙도 없고 수많은 변수에 대응해야 하는 현실과는 반대죠.
현실도피 아니냐구요? 매일같이 퍼즐에만 매달린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현대인에게는 이런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조각을 찾아 제자리에 끼우는 단순 작업 속에서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히고,한 발 물러나 인생을 관조할 수 있게 된다고나 할까요. 마치 서예, 사군자 그리기(…), 명상과도 같은 효과가 있다고 이 연사 부르짖어 봅니다.
게다가 퍼즐놀이는 멀티태스킹을 허락해주는 훌륭한 취미활동입니다. 퍼즐 맞추며 음악 듣기, 차 마시며 퍼즐 맞추기, TV 틀어놓고 퍼즐놀이도 가능하고 와인 한 잔 마시며 퍼즐 조각을 찾아도 됩니다. 혼자가 아니라 친구와 수다떨며 놀면 더 재밌습니다.
오늘의 퍼즐은 500조각짜리 유럽 마을 퍼즐입니다. ‘뮤직 인 타운’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네요. 얼핏 중세의 마을같지만 관람차도 있고 전기수리공도 눈에 띄고 트램 같은 차도 오갑니다. 전 이렇게 색깔과 인물과 건물이 많은 아기자기한 퍼즐이 좋더군요.
가끔 대형 서점에 갈 때마다 퍼즐 코너를 살펴보곤 하는데 제 취향에 맞는 퍼즐은 그닥 많지 않더군요. 아직 성인용보단 아동용 시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해외 여행을 갈 때 퍼즐도 쇼핑 리스트에 넣어둔다거나 혹은 가끔 아마존을 기웃거려 보곤 합니다. 취미가 있어 오늘도 힘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