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여행을 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남는 일이 종종 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서둘러 움직이다 보니 공항 근처에 도착했는데 탑승시간까지 3~4시간 남는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럴 땐 당연히 제주 원도심을 둘러봐야 한다. 공항에서 가까운데다 3시간 정도면 두 곳 이상은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지 순례로 점철된 제주여행만 되풀이해오던 사람이라면 원도심 구경은 더욱 해볼 만하다. 그다지 꾸민 것 없는 제주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색다른 여행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아라리오뮤지엄을 둘러 보는 게 좋다. 아리리오뮤지엄은 ㈜아라리오의 창업자인 김창일 회장이 수집한 컬렉션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미술관이다. 아라리오뮤지엄은 김 회장이 사무실·영화관·모텔 등으로 사용되던 건물들을 매입한 후 기존의 히스토리에 현대미술의 문화적 가치를 더 해 문화공간으로 꾸며 놓은 곳이다. 아라리오컬렉션은 김 회장이 35년간 수집한 작품들로 구성돼 있는데 지난 1998년 이후 서구 현대미술로 수집의 범주를 확대했고 2000년대 초반부터는 중국과 인도 동남아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3,700점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와 ‘바이크샵’은 구시가지에 버려져 있던 건물들을 현대미술전시장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탑동시네마는 영화관으로, 탑동바이크샵은 오토바이 가게로 이용하던 곳을 리모델링한 후 갤러리로 개관한 것이다. 제주시 탑동로 4길 6-12, 입장료 성인 1만2,000원, 청소년 6,000원
비행기 탑승 전까지 간단하게 한 끼를 때워야 한다면 ‘국수문화거리’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제주공항과 크루즈터미널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국수문화거리는 제주의 토속메뉴인 고기국수와 멸치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모여 있는 거리다. 제주도에서는 오래전부터 집안이나 마을에 대소사가 있을 때 돼지를 잡아 손님들을 대접했는데 돼지의 사골을 고아 낸 국물에 국수를 말아 고기국수를 만들어 상에 올리곤 했다. 고기국수가 외지인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문예회관에 이르는 거리에 국숫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해 지금은 대략 15곳 안팎의 국숫집이 모여들어 영업을 하고 있다. 저마다의 조리법으로 손님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이곳 국숫집들은 주로 돼지고기국수와 멸치국수를 판매하고 있는데 가격은 5,000~6,000원선으로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다.
제주목 관아는 관덕정(보물 제322호), 귤림당 등 관아시설이 있던 곳으로 탐라국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사적이다. 관아시설은 1434년(세종 16)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진 이듬해인 1435년 골격을 다시 세운 것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내내 증개축이 이뤄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크게 훼손,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에 제주시에서는 1991년부터 1998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를 진행, 동헌·내아 건물터 등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한 후 1993년 3월 제주목 관아지 일대를 사적 제380호로 지정했다. 또 문헌 및 중앙문화재위원·향토사학자 등의 고증과 자문을 거쳐 2002년 12월 복원공사를 완료했다. 제주목 관아가 이채로운 것은 근처에 제주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귤들이 식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원조의 ‘귤림당중수기(橘林堂重修記)’에서는 “이 땅에 귤명(橘名)된 국과원(國果園)이 모두 36곳인데 홀로 이 귤림당만이 연희각 가까이에 있다. 입추(立秋) 이후 서리가 내려서 많은 알갱이가 누렇게 익는다. 공무를 보는 여가에 지팡이를 짚고 과원을 산책하노라면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르고 가지에 열매 가득한 나무들을 쳐다보노라면 심신이 다 상쾌해진다”고 기록돼 있다. 여러 건물 중 중수기에 거론된 귤림당은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두거나 시를 지으며 술을 마시는 장소로 이용되던 곳이다. 제주시 관덕로7길 13.
제주동문시장은 제주도 내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으로 내륙지방의 재래시장들이 대형 할인점의 시장석권으로 쇠퇴일로를 걷는 데 비해 아직은 건재한 편이다. 동문공설시장 번영회에 따르면 총 434개 점포(수산시장 94개 포함)에 번영회원 153명, 비회원 187명(수산시장 94명 제외)이 영업을 하고 있다. 이곳은 제주의 특산인 생선·감귤 등을 주로 판매하고 있는데 제주 특산물을 구매할 경우 공항이나 시내 노점에서 구매하는 것에 비해 많이 저렴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제주시 동문로 16. /글·사진(제주)=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