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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교사’ 유인영 “내가 봐도 얄미운, 하지만 순수하게 맑은 악녀”

4일 개봉하는 김태용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여교사’에서 유인영이 연기한 ‘혜영’은 한국영화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캐릭터다. 김하늘이 연기한 주인공 ‘효주’의 반대지점에 서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분명한 ‘적대자(antagonist)’의 위치에 서 있지만, 그렇다고 ‘혜영’을 ‘효주’와 상반되는 무조건적인 악역이라고 주장하기에는 그 또한 애매하다.

이처럼 악역처럼 보이지만 과연 악역이 맞나 의심을 주는 ‘혜영’의 캐릭터에 유인영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절묘한 선택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가면’, ‘오 마이 비너스’ 등 여러 드라마에서 부와 명예를 가진 것으로도 모자라 모든 것을 빼앗으려는 악녀 캐릭터를 연기했던 유인영이기에 ‘여교사’의 ‘혜영’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전형적이면서 전형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소화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영화 ‘여교사’의 개봉을 앞두고 유인영 배우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유인영은 ‘여교사’의 언론시사회 직후 그녀가 연기한 ‘혜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맑은 악역”이라는 재미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유인영에게서 직접 ‘맑은 악역’이라는 표현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듣고 싶었다.

“사실 저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연기를 하는 순간까지도 ‘혜영’이가 악역이라는 생각을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처음부터 ‘혜영’은 ‘효주’에게 아무런 악의도 의도도 없이 항상 호의를 베풀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저보고 ‘악역’이라고 하는 말이 아쉬웠어요. 왜 ‘혜영’이 악역이지? 그런데 영화를 보고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니, 기존 드라마 속 악녀처럼 누가 봐도 나쁜 짓을 하는 그런 악역이 아니라 새로운 느낌의 악역이 만들어진 느낌이었어요.”

유인영의 이야기처럼 ‘여교사’의 ‘혜영’은 관객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없이 봐온 그런 흔하디 흔한 악녀(惡女) 캐릭터와는 명백하게 차별되는 캐릭터다. 보통의 이야기 전개라면 ‘실장님’으로 대표되는 멋진 남자 주인공이 가진 것은 없지만 착하고 성실한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고,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지만 단 하나 사랑만은 가질 수 없던 악녀는 남자 주인공에 대한 집착으로 여자 주인공을 파멸시키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종국에는 악행들이 모두 공개되며 자신이 몰락하고 만다.

그러나 ‘여교사’는 오히려 이런 전개에서 반대의 양상을 보인다. 유인영이 연기한 ‘혜영’은 재단 이사장(이경영 분)의 딸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버지의 힘으로 바로 정교사에 부임한다. ‘혜영’은 학교에서 만난 ‘효주’(김하늘 분)가 대학시절 조교였다며 친하게 지내고자 한다. 하지만 학생들에게조차 “진짜 선생님도 아닌 주제에”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꾹 참아가며 정교사가 될 날만 기다리던 계약직 교사 ‘효주’는 자신이 정교사가 되야할 시점에 자신을 밀어내고 정교사가 된 ‘혜영’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고, 결국 ‘효주’는 ‘혜영’과 자신의 제자인 ‘재하’(이원근 분)가 사제지간임에도 부적절한 육체관계를 맺는 현장을 목격한 후 이를 빌미로 ‘혜영’을 협박하고 ‘재하’를 ‘혜영’에게서 빼앗는 것으로 정교사 자리에서 밀려난 분풀이를 하려고 한다. 이야기 전개만 본다면 ‘혜영’이 주인공 ‘효주’에 반하는 ‘안타고니스트’이긴 하지만, 오히려 김하늘이 연기한 ‘효주’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악녀’에 가깝다.

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저도 관객으로 영화를 보면서 솔직히 ‘혜영’이 얄밉다고 느꼈어요. 분명히 ‘혜영’은 의도하지 않고 순수하게 했다고 우길 수 있지만, ‘효주’의 감정에서 영화를 보니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혜영’의 그런 밝은 모습이 하나하나 다 얄미운 거에요. 저도 이런 일을 당해본 적이 있어요. 작품 하나를 마치고 다음 작품이 결정되지 않아 쉬고 있는데, 주변에서 다음 작품 언제 들어가냐고 자꾸 물어볼 때가 비슷한 것 같아요. 그 사람은 아무런 악의 없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지만, 그렇다고 ‘나도 빨리 다음 작품 하고 싶은데 작품이 안 들어와’라고 솔직히 말할 수도 없고. 그렇게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라도 막상 당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 이야기처럼 ‘여교사’의 ‘혜영’은 악의 없는 순수함의 결정체다. 그렇기에 후배인 자신을 냉담하게 대하는 ‘효주’의 태도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나중에 결국 ‘효주’에게 사과를 받아낸 순간에도 아무런 뒤끝없이 ‘효주’를 꼭 끌어안으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효주’를 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행동이 ‘혜영’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당하는 ‘효주’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애써 지키려던 마지막 자존감까지 처참하게 무너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혜영’이는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단순한 아이에요. 영화를 보시고 ‘혜영’이가 다른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효주’를 대하는 것이 아니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혜영’이는 정말로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을 할 뿐이에요. 그래서 ‘맑은 악역’이라는 말이 나왔어요.”

“운동장신도 ‘효주’가 ‘혜영’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자 ‘혜영’이가 바로 언니라고 부르며 ‘효주’를 안아주잖아요. 그 장면은 ‘혜영’을 연기하는 저조차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감정이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 모습이 바로 ‘혜영’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혜영’이는 정말로 그런 아이에요.”

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사실 배우 유인영의 모습도 그런 의미에서는 ‘혜영’을 많이 닮아있었다. 유인영에 대해 관객들이 흔히 가지는 이미지는 드라마 속에서 자주 보던 악녀 캐릭터의 이미지가 대부분이겠지만, 실제로 만나본 배우 유인영은 차갑고 도도한 악녀보다는 ‘혜영’처럼 천진하게 밝은 소녀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 말은 ‘혜영’처럼 너무나 ‘맑은 악역’이라 의도치 않게 툭툭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그런 사람이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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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인영은 자신의 이미지가 드라마를 통해 ‘악녀’로 굳어지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혜영’처럼 맑고 순수한 성격이지만 모델 출신으로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만을 보고 악녀 캐릭터에 주로 캐스팅되는 것은 유인영이 배우로서 가진 가장 큰 딜레마였다.

“악녀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면 제 자신이 항상 예민해져있어요. 모두가 욕하는 ‘악녀’ 캐릭터라고 해도 연기를 하는 저까지 그 캐릭터를 미워하면 안 되잖아요. 모두가 미워하니까 저라도 그 캐릭터를 사랑해줘야 해요. 그래서 작품 속에서 그 캐릭터가 아무리 나쁜 짓을 하더라도 연기를 하는 ‘유인영’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자기 합리화를 시킬 수 있도록 정당성을 가져다 붙여요. 그러다보면 전 작품을 하는 내내 매일 화를 내고, 신경이 곤두서있고 저도 모르게 예민해지게 되는데 그런 부분이 너무나 힘들었어요. 어떤 분들은 악녀 캐릭터를 연기하면 연기를 통해서라도 마음껏 내지를 수 있어서 속이 후련하다는 분도 계신데, 저는 그렇지는 못해요.”

“‘여교사’를 하면서도 그런 점을 느꼈어요. 제가 그동안 드라마에서 해온 캐릭터들이 대부분 극단적인 인물이 많았어요. 괴롭혀도 극단적이고, 나쁘면 아주 나쁘고, 착하면 아주 착하기만 하고.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제가 그런 극단적인 모습에 길들여졌나봐요. ‘여교사’의 화학실 장면에서도 저는 혼란을 느껴서 감독님에게 ‘제가 정말 못 되게 연기를 해야 하냐?’고 물어봤어요. 연기를 하다보니 자꾸 저는 해오던 대로 극단적인 연기가 나오려고 하더라고요. 그 때 감독님이 ‘김하늘씨를 괴롭힌다는 생각을 안 하셔도 된다’고 해주셨어요. 이번 영화를 통해서 수위조절이라는 것을 많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됐죠.”

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영화 ‘여교사’ 유인영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배우로서 유인영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드라마에서는 그래도 악녀 캐릭터로 제법 인지도를 굳혔지만 스크린에서는 아직도 ‘유인영’이라는 배우의 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그나마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에서 조태오(유아인 분)로 인해 곤욕을 치루는 여배우 ‘다혜’를 연기하며 이제 스크린에서 좀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유인영을 대표하는 이미지인 ‘악녀’ 캐릭터의 이미지 역시 배우로서 유인영이 한층 더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유인영은 배우로 한 발 더 앞으로 나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조금씩 이미지를 바꿔나가고, 배우로서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려는 의욕에 가득 차 있다. 이 배우가 앞으로 보여줄 모습, 충분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제가 모델 활동을 오래 해서 제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편이에요. 이것이 내 장점이라면 이런 부분들이 연기와 복합되어 시너지가 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화차’의 김민희나 ‘미씽’의 공효진처럼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캐릭터를 한 번 연기해보고 싶어요.”

“저는 사실 자신감이 없는 편이에요. 성격도 소극적이고 내성적이고. 그래서 처음부터 무조건 잘 할 수 있다고 말하고는 막상 못 하는 것도 싫고, 그런 모습들이 배우로서 ‘유인영’에 대해 평가할 때 마이너스가 된다는 생각도 해요. 아직도 제가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도 잘 알고 있고 그런 점이 어릴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왜 날 몰라줄까? 근데 나도 내 자신을 표현 안 하는데 그걸 누가 알아주겠어요? 그래도 전 현장에서 선배님들이 잘 챙겨주고 보기보다 굉장히 연기에 대해 생각하는 점이 예쁘다는 말을 듣곤 해요. 그래서 언젠가는 이렇게 계속 차근차근 해나가다보면 ‘배우 유인영’을 알아주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점에서는 저도 감사드려요. 제가 너무 일찍부터 그런 평가를 받았다면 배우로서 성장할 힘을 잃고 나태해졌을지도 모르니까요.”

원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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