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오르내리고 들락거렸던 어린 시절의 옛집이 떠오른다. 소꿉친구들과의 숨바꼭질부터 엄마 모르게 숨어 먹던 불량식품 먹거리의 짜릿한 기억, 매일 아침 삐걱거리는 문을 열며 시작한 그 시절의 다짐들을 모두 간직한 저 낡은 집이, 지금은 어떻게 돼 있을까.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버티고’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추억은 늘 아련하다. ‘집’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파생된 기억과 경험·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 홍범이 유년의 추억을 간직한 집을 주제로 신작들을 선보였다. 전시장은 중구 장충동의 복합문화공간 ‘파라다이스 집’. 주인이 바뀌고 용도가 달라질 때마다 개·증축된 80여년 된 양옥집이 건축가 승효상의 재능기부로 온통 하얗게 변신해 ‘시간의 흔적이 빚어낸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장소다. 공간과의 절묘한 조화로 전시 자체가 각자의 기억 속 ‘옛집 여행’이 됐다. ‘방 안의 방들’에서의 방은 몸담았던 방인 동시에 기억의 방이다. 전시 제목인 ‘오래된 외면’은 표피를 뜻하는 외면과 꺼리고 피한다는 뜻의 외면을 중의적으로 담고 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이사를 많이 다녔다는 작가는 “이사가 아니라 여행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새로운 공간 구경을 즐기게 했고 그 영향으로 ‘집’을 소재로 한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월1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