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껄렁한 연애

- 박미경作

1115A39시로




껄렁한 남자와 걸으면


덩달아 껄렁한 여자가 된다

저기 금촌 어디쯤

아님 일산시장쯤이나

뒷주머니에 노랑 빗거울 세트를

불룩하게 찔러 넣고

청바지에 위험천만 햇살이 매달린

헤살스런 눈짓

껄렁한 남자의 팔짱을 끼면

껄렁한 남자는 더욱 팔을 단단히 하고

그의 팔에 낀 껄렁한 여자의 껄렁해진 하얀 손

껄렁 속에 숨겨진 속 깊은

쩔렁이는 대바람 소리 듣는다

한두 번 전쯤의 전생에서 깊은 산골

대바람 소리 나는 남자와

목숨 걸고 바람나는 그런

껄렁한 여자가 되어

그 남자의 껄렁한 밥을 짓고


껄렁한 아이를 낳고 그 아이 커 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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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렁한 사랑 따윈 다 잊어버려도

껄렁했던 그 바람 소리 그날의

햇빛만 남아서

까짓것 껄렁한 남자를 원한다면, 금방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 마침 닭의 해니, 모히칸 스타일로 수탉벼슬 머리 꼿꼿이 세우고, 껌을 쫙쫙 씹으며, 깡통을 멋지게 차올려 달의 이마를 맞힐 수도 있다. 물론 두 손은 뒷주머니 집어넣은 채. 헌데, 정말 그뿐이야? 둘 다 껄렁한 건 좋은데, 껄렁한 아이까지 낳자구? 흠, 껄렁한 남자를 원하면 오히려 미더운 남자가 될지도 몰라. 다들 실력도 스펙도 재력도 짱짱한 남자를 원하니 이렇게 껄렁하게 어깃장 놓고 있었다니까.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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