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새해가 시작됐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운 것 같다.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내외적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하루빨리 정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지난 2014년 경제성장률이 3.3%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2012년부터 올해까지 2%대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저성장이 장기간 지속된 것은 전례가 없다. 대규모 충격으로 경제가 급격히 추락했던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우리 경제가 늪에 빠진 것처럼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절박한 위기의식을 공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근본적인 체질개선보다 현상유지에 급급한 대응이 계속돼온 것이 지금의 결과를 초래했다.
1990년대 초반 7.3%에서 현재 2.7% 수준으로 추락한 잠재성장률은 우리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지속되면서 노동의 성장기여도는 올해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부문 고정투자 비중도 1992년 32%에서 2015년 25%로 감소해 자본의 성장기여도 또한 4%에서 1.5%로 급감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를 막고 반등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다. 이는 어느 한 부분을 손댄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루아침에 풀릴 수도 없다.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현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미래사회 모습에 대한 추론을 토대로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2017년 한국 경제는 소비절벽 우려, 설비투자 개선 미흡, 건설경기 둔화 등으로 뚜렷한 성장 모멘텀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추세대로 가면 올해 말에는 가계부채가 1,460조원까지 늘어나고 조선업 등의 구조조정으로 실업률도 4%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또 저금리 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에도 경제가 ‘실질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중립적 상태(New Neutral)’에 진입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올해는 생산가능인구(3,762만 명)가 처음으로 줄어들기 시작하고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이 13.8%로 늘어나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인구구조의 변화는 잠재성장률을 하락시킬 뿐만 아니라 소비와 투자 위축, 소비구조 변화, 재정수지 악화, 소득불평등 심화를 초래하는 ‘에이지퀘이크(Age-Quake)’가 될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김영삼 정부의 신경제부터 김대중 정부의 지식기반 경제, 노무현 정부의 혁신주도형 경제, 이명박 정부의 녹색경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성장 원천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돼왔다. 올해도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가장 시급한 경제현안인 장기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비전과 새로운 성장원천을 찾기 위한 논의가 봇물을 이룰 것이다. 새로운 성장원천은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자원배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념과 세대 간 인식차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가치중립적이고 구체적이며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다. 지난해 1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바프가 처음 제시한 4차 산업혁명은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디지털·생물학·물리학 등이 융합되는 기술혁명과 이를 통해 나타날 전반적인 사회·경제 시스템의 혁신을 의미한다. 획기적인 기술진보, 파괴적 기술에 의한 산업재편, 생산·관리·지배구조를 포함한 전반적인 시스템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은 곧 다가올 미래사회의 모습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이러한 초연결성으로 축적된 빅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인간의 행동 패턴을 예측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처럼 다가오는 미래에는 기술융합으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생산과 유통비용이 낮아져 소득이 증가하고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있지만 승자독식 기조가 강화되면서 일자리가 양분되고 중산층이 줄어드는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산업 측면에서도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기술 기반의 플랫폼 발전으로 공유경제, 온디맨드 경제가 부상하고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면서 동종업계뿐 이니라 이종업계와의 경쟁도 한층 격화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 같은 자동차 회사가 ‘이동 서비스 공급업체’로 변신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으로 서비스를 더욱 중시하는 ‘서비스 중심 제조 모델’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수 있는 범정부 차원의 혁신전략이 수립돼야 한다. 비록 다보스포럼에서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할 수 있는 순위가 42위로 평가되기는 했지만 ICT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 중 하나이고 2005년 이후 매출액이 1,000억원을 넘어선 벤처기업 수가 474개로 10년 만에 7배 증가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가장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는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법·제도·규제를 포함한 사회적 인프라의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출발점에 서 있는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화된 산업정책이 나와야 한다. 특히 네거티브 시스템 정착을 통한 투자여건의 획기적 개선과 도전과 실패가 용인될 수 있는 평가·보상(인센티브) 시스템으로의 개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