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국내에 들어오면 정국도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은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하면 확실한 대선 주자가 없는 나머지 정당의 약점을 최대한 활용, 설 연휴까지 국내 정치의 흐름을 관망한 뒤 다양한 세력과의 합종연횡을 통해 정계 개편을 주도하면서 ‘문재인 대세론’을 깨뜨린다는 복안이다.
반 전 총장 측은 11일 서울 마포에 마련된 한 사무실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어 대권행보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서울신문 부국장 출신인 이도운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금 정치적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 전혀 고려할 시점이 아니다”라며 “일단 설까지는 국민의 목소리만 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기 대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반 전 총장 측이 이처럼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만큼 현재 각 정당의 사정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우선 새누리당은 마땅한 대선주자 하나 없음에도 인적 청산을 놓고 내전만 거듭하면서 지지층 이탈을 자초하고 있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저와 우리당은 반 전 총장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정책과 이념이 맞는지 검증해야 한다”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새누리당이 반 전 총장을 붙잡지 못하면 불임 정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반 전 총장을 향한 공개 구애에 한창이다. 국민의당·바른정당 모두 현재의 대선주자 및 정당 지지율을 감안할 때 어떤 식으로든 통합과 연대를 하지 않으면 권력 쟁탈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국민의당이 그리는 구상은 개헌을 매개로 호남과 충청을 아우르는 제3지대 연대다. 충청 출신인 반 전 총장과 호남 세력이 주축인 국민의당이 손을 잡는다면 ‘뉴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당 이후 좀처럼 뉴스의 중심을 차지하지 못해 고심이 깊은 바른정당도 최근 들어 이 흐름에 가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전날 “반 전 총장이 국민의당·바른정당이 함께하는 연정의 중심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다만 오는 25일 대권 출마 선언 계획을 밝힐 유승민 의원은 “반 전 총장이 바른정당의 기조에 동의하면 연대할 수 있다”면서도 “국민의당 안에는 안보 문제와 관련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정리되지 않으면 통합이나 당대당 연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반 전 총장 입장에서 가장 좋은 그림은 여러 정당을 자신의 ‘하위 파트’처럼 거느리면서 복수의 정당이 본인을 지지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반 전 총장이 끝까지 특정 당에 속하지 않은 채 대선을 치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반 전 총장 측이 ‘귀국 일성’으로 국민 통합을 강조한 것 역시 이처럼 다양한 정치 세력과의 연대를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한편 반 전 총장이 대권 플랜을 가동하면서 베일에 가려진 지원 그룹의 면면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도운 대변인과 이상일 전 의원, 김봉현 전 호주대사, 곽승준 고려대 교수 등이 이끄는 ‘마포팀’은 공식적인 보좌 조직으로 실무 지원을 담당한다.
또 김숙 전 유엔 대사를 중심으로 한 ‘외교관 그룹’에는 오준 전 유엔 대사, 심윤조·박진 전 의원 등이 속해 있다. 노신영 전 총리와 한승수 전 총리, 신경식 헌정회장 등은 2선에서 정치적 조언을 하는 멘토 역할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