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에너지와 산업 안보를 위해 비축하던 석유의 양을 처음으로 줄이기로 했다. 산유국들의 과잉생산으로 국제유가가 낮아지고 공급이 원활해진 면도 있지만 우리 경제의 더딘 성장에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으로 대규모 석유 비축의 필요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1·4분기께 제4차 석유비축계획을 수정해 발표할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계획된 석유 비축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석유 비축은 산유국에서 발생한 테러로 외부로부터 석유공급이 끊겨 국내 산업과 가계가 혼란을 겪거나 국가 전시상황을 대비해 비상대비자원관리법과 석유및석유대체연료법, 한국석유공사법 등을 제정해 강제로 시행하고 있다. 석유 수급이나 경제상황이 현저하게 변동될 때 정부가 비축 석유를 풀어 국가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0년부터 석유 비축을 시작했다. 1970년대 중동에서 전쟁과 감산 등으로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은 후 비축의 필요성을 절감해서다. 1차(1980~1989년) 계획에서는 약 3,800만배럴을 목표로 잡았고 경제성장률이 10%까지 뛰기도 했던 2차(1990~2003년)에는 1차의 두 배 이상인 8,790만배럴을 비축목표량으로 정했다. 2차 계획을 추진할 당시 가파른 경제성장으로 연간 석유소비 증가율은 예상치(2.9%)를 뛰어넘어 연 4.2%까지 치솟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2차 계획을 중단하고 1995년 비축량을 2013년 1억70만배럴까지 늘리는 내용을 담은 3차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2014년 4차 계획 때도 정부는 비축량을 오는 2025년까지 1억700만배럴로 늘렸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가 보유한 석유량은 9,400만배럴로 국가가 107일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권고 기준(90일)보다 17일 더 많다.
하지만 3%대로 잡았던 우리 경제 성장률이 2%대를 유지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떨어졌고 수출부진과 글로벌 경쟁력 악화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산업 부문의 석유 수요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 제고로 석유 소비가 앞으로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정부는 석유비축계획을 수립한 지 37년 만에 비축량을 줄일 전망이다. /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