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세계적 석학 앨빈 토플러를 멘토 삼아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1980년대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는 반면 공산국가의 삶은 피폐해지면서 양극체제의 균형이 무너져가고 있을 때였다. 고르바초프는 토플러에게 “국민이 잘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해법을 물었다. 토플러는 이에 대해 “정보를 개방해야 하는데 그러면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다”고 대답했다. 옛 소련체제의 붕괴와 지금의 러시아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르바초프의 ‘자본주의 실험’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오히려 지난 1998년 8월17일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선언으로 이어졌다. ‘세계 경제의 신데렐라’였던 아시아가 추락한 바로 다음해다. 그때만 해도 ‘다음은 어디인가(Who is next)?’라는 시장의 공포가 러시아에서 현실화할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루블화가 폭락하고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이를 살려낸 것은 공교롭게도 미국 주도의 서방자본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이 긴급수혈에 나서 국가부도를 막아줬다. 이후 20년이 흘렀지만 러시아 경제는 여전히 세계 경제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2000년대 브라질·인도·중국과 함께 브릭스(BRICS)의 한 곳으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2위로 한국(11위) 다음이다. 러시아 국민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지지하며 ‘강한 러시아’를 염원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 러시아가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 강세론자로 통하는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마저 ‘러시아를 사라(Buy Russia)’고 권고하고 나섰을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돈독한 관계에 힘입어 러시아 경제와 자산시장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데올로기의 대척점에 있던 러시아가 미국에 의해 부도위기를 넘긴 데 이어 부활까지 꿈꾸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이용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