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탈진실 사회에서 분노하기

박현욱 여론독자부 차장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치적 이변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전문가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과 유권자와 시민의 분노로 촉발됐다는 점이다. 반(反)난민·이민 정서와 일자리·소득 감소로 인한 불만이 쌓인 결과가 곧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이요, 국정농단 가담·공모 혐의가 있는 대통령과 참모, 주변 인물들에 대한 시민의 격분이 민의로 표출된 것이 탄핵정국이다.

나라마다 나타난 분노의 표출은 비슷하나 분명 차이는 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은 대중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자극한 프레임 전쟁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민자 증가로 일자리를 빼앗긴 백인 남성들의 상실감이 큰 몫을 했다. 객관적 사실과 이성보다는 유권자 개인의 신념과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심지어 무시해버리는 현상은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지난 한 해를 대표하는 말로 지목한 ‘탈(脫)진실(post-truth)’과 맞닿아 있다.


탄핵정국의 민심은 탈진실 사회의 그것과는 다르다. 분명 건강한 분노다. 자칫 무질서와 일탈로 흐를 수 있는 대중의 아노미적 성향을 자제하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감정보다 사실에 주목하고 판단하는 분노다. 주자학을 세운 주희가 말한 ‘혈기의 분노는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의리의 분노는 있어야 한다’는 것과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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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의 분노가 사라진 자리는 편견이 메운다. 새해 초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변론을 맡은 대통령 변호인단의 한 변호사가 ‘예수도 군중재판으로 십자가를 졌다’는 말로 박 대통령을 우중(愚衆)에게 희생된 성인에 비유해 빈축을 샀다. ‘탄핵 찬성=나쁜 사람, 탄핵 반대=진실한 사람’ 프레임이다. 조악하지만 익숙한 이분법이다. 탈진실화에 이보다 최적화된 도구는 없다. 종교화까지 가미한 탈진실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대중에게 정치·사회의 무관심을 넘어 냉철한 판단과 자기 성찰, 공동체를 위한 합리적 선택을 곁가지 따위로 여기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은 ‘상시분속(傷時憤俗)’이라고 말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참다운 선비가 아니며 그런 사람은 시를 지어서도 안 된다고 경계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분노가 삭아진다고 믿는 것도 편견이요 탈진실이다. 지난해 말 만난 우리 사회의 건강한 보수이자 시민운동계의 대부인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우리는 분노할 권리가 있으며 마땅히 분노해야 한다”고 말했다. 팔순을 앞둔 원로는 그렇게 거듭 분노를 언급했다. 탄핵심판부터 대선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불의를 보고 불승분노(不勝憤怒·분노를 참지 못함)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hwpark@sedaily.com

박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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