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스위스 론자는 의약품에 쓰이는 캡슐 생산업체 캡슈젤을 55억달러(약 6조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신약개발에서부터 위탁생산(CMO), 최종 상품제조까지 통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겉으로는 론자의 사업다각화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업계에 파장을 불러올 만한 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론자는 CMO 생산능력 기준 세계 1위인데 캡슈젤 인수에 총알을 쓴 나머지 CMO 추가 투자에 나설 여력이 없어졌다는 얘기다. 론자·베링거잉겔하임과 3강을 구성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입장에서는 더할 수 없는 호재인 셈이다.
CMO 업계의 사정에 정통한 바이오업계 고위관계자는 17일 “론자가 1조원 이상의 인수자금은 직접 댄다고 하더라도 나머지는 금융시장 등을 통해서 조달할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향후 CMO 추가투자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론자가 CMO 증설에 나선다고 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다”며 “결과적으로 3공장 건설을 통해 증설에 나서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반사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론자와 캡슈젤의 매출액을 더하면 약 48억스위스프랑(약 5조6,2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프로스트앤설리반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은 약 1조1,050억달러다. 이중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2,048억달러로 18.5%를 차지한다. 바이오의약품은 성장세가 높은데 향후 10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9%로 전체 제약시장(4%)의 두배가 넘는다. 이 때문에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을 하는 CMO 업체들의 성장 전망도 밝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론자가 캡슐생산으로 기운 것은 사실상 CMO 증설 경쟁에서 한발 물러났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삼성의 3공장의 완공되는 오는 2018년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생산능력이 36만2,000ℓ에 달하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으로 CMO 업체 순위는 론자가 26만1,000ℓ로 1위, 베링거잉겔하임이 23만3,000ℓ로 2위, 삼성이 18만2,000ℓ로 3위다. 론자가 삼성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추가 대형 투자가 필요한데 되레 캡슐 쪽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실제 CMO 사업은 대형 투자가 동반되는 장치산업이다. 최근 증설에 나선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의 경우 18만ℓ 생산능력에 투자비만 8,500억원에 달한다. 삼성은 글로벌 의약품 시장 상황을 봐서 올해 중 4공장 추가 건설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바이오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재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2위인 베링거도 바이오시밀러 사업이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고 있고 동물의약품에 집중하는 모습”이라며 “CMO 분야에서 삼성의 독주가 예상보다 빨리, 그것도 큰 규모로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상황에 따라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의약품 CMO 분야를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