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처럼 봄, 가을이면 보약을 지어 먹던 시절이 있었다. 일교차, 한기(寒氣)와 온기(溫氣), 습한 바람과 건조한 바람 등 계절 변화에 민감한 어린 아이들은 여름, 겨울처럼 기후 특성이 뚜렷한 계절을 잘 보내려면 봄, 가을에 미리 ‘몸 만들기’에 들어가야 했다. 봄 보약은 지난겨울의 한기(寒氣)를 풀고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해 성장의 기운을 더하고, 가을 보약은 여름 폭염에 쌓인 열(熱)을 씻어내고 땀으로 빠진 진액을 보충해 추위를 이겨낼 기운을 보한다. 여기에 심윤지 아이조아한의원 원장은 “하지만 요즘에는 아이 기력이 떨어져 병치레가 잦을 때, 질병 감염이나 기력 소모에 대비해야 할 때, 면역력 증진이 필요할 때, 밥을 잘 먹지 않아 성장에 영향을 미칠 때 등 계절에 상관없이 겨울, 여름에도 아이에 따라 언제든 보약을 먹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보약, 아이 체질과 건강 상태에 맞는 1:1 처방
현재 시중에는 아이의 면역력이나 성장, 건강 개선을 위해 홍삼, 비타민, 아연, 칼슘 등 수많은 건강기능식품과 영양제가 출시되어 있는 상황. 실제로 많은 가정에서 보약 대신 건강기능식품이나 영양제를 섭취하고 있다. 건강관리에 도움 되는 기능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은 특이 체질이 아닌 이상 누구나 섭취할 수 있는 식품, 비유하자면 ‘기성복’과 같다. 그에 비하면 보약은 한의사가 1:1로 직접 진료하고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약재를 선별해 처방하는 ‘맞춤복’인 셈. “아이가 평소 어떤 질병에 잘 노출되는지, 밥은 잘 먹고 잠은 잘 자는지, 땀을 많이 흘리거나 추위를 잘 타는지 등 체질이나 병력, 생활습관, 식습관, 현재의 건강 상태 등을 모두 고려해 보약을 처방한다”는 것이 심윤지 아이조아한의원 원장의 이야기다.
이런 아이라면 지금 보약을 먹이는 것도 좋다
평소 건강할 때는 아이에게 필요한 건강기능식품, 영양제를 섭취하며 ‘건강 향상과 유지’에 힘쓰고, 만약 아이가 같은 질병을 반복적으로 앓거나, 영양 섭취가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거나, 체격 또는 체력적으로 또래에 비해 현저히 뒤처지거나, 차후 생활환경이 달라져 심신에 스트레스가 쌓일 수 있을 때는 보약을 생각해본다.
독감을 앓고 나서 기력이 없는 아이 ▶ 독감 예방접종을 했어도 평소 병치레가 잦아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어린 아이들은 유행성 독감에 노출되었을 수도 있다. 독감에 걸리면 항바이러스제로 치료하지만, 만약 독감을 앓고 난 후 입맛이 떨어지고, 기운이 없고, 잔기침 콧물 가래와 같은 감기 끝물 증상에 시달리는 등 독감 후유증이 있다면 보약으로 기력을 보충해줄 필요가 있다. 2월까지 또 다른 유형의 독감 인플루엔자가 유행할 예정이라 서둘러 기력과 면역력을 보강한다.
평소 감기나 비염을 달고 사는 아이 ▶ 겨울마다 감기나 비염을 달고 사는 아이들은 폐(肺) 기운이 허약하다. 겨우내 감기와 비염으로 병치레에 시달리면 아이는 성장할 여력을 잃고 만다. 봄철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호흡기 면역력을 강화하는 보약을 챙겨준다.
손발이 차고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아이 ▶ 손발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는 아이들은 속이 냉하고 비위(소화기) 기운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은 조금만 찬 것을 먹어도 배가 아프다고 하고 겨울이면 장염이나 배탈 설사에 시달리기도 한다. 양기(陽氣)를 보강하고 비위 기운을 강화하는 보약이 필요하다.
배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 하고 잘 안 먹는 아이 ▶ 배가 자주 아픈 아이들은 먹는 일이 썩 즐겁지 않다. 먹는다 해도 영양분의 소화, 흡수 기능이 떨어지니 제 양을 먹어도 성장부진을 겪는다. 식욕부진과 성장부진의 굴레에서 벗어나 봄철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래에 비해 작고 마른, 체격이 왜소한 아이 ▶ 또래에 비해 마르고 작다면 분명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태어났을 때에 비해 키, 체중 백분위수가 점점 하락세에 있다면 아이가 식욕부진으로 잘 먹지 않는지, 먹어도 영양의 소화, 흡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지, 성장에 써야 할 기운이 병치레나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등에 소진되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한다. 원인을 파악하고 원인 해결에 도움이 되는 보약으로, 키와 체중의 성장을 이끌어준다.
봄에 입학, 새학기 등 단체생활을 시작하는 아이 ▶ 생활이 달라지면 아이들은 체력이나 심리적인 면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래 친구들과 단체생활을 하다 보니 질병 감염의 기회도 많아진다. 단체생활에 잘 적응하고, 감기, 장염, 수족구 등 질병에 덜 노출되도록 면역력을 키워준다.
체력이 부족해 잘 지치고 성격이 예민한 아이 ▶ 심(心) 기운이 허약한 아이들이 잘 놀래고 예민하다. 짜증이 많은 편이고 깊이 잠들지 못해 다소 신경질적인 부분이 있다. 얼굴색이 창백하고 마른 아이들이 많은데, 심 기운을 보강해 심신이 안정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겨울철 급격히 살이 쪄서 소아비만이 걱정인 아이 ▶ ‘뚱뚱한데 웬 보약?’ 할 수도 있지만, 보약은 오장육부의 기혈순환과 기능을 도와 신체 대사가 원활히 이루어지게 한다. 아이가 섭취한 영양이나 기운이 정체되어 있어도 살이 찔 수 있다. 봄철, 아이의 살이 키로 갈 수 있도록 보약으로 기혈순환을 돕는다.
도움말 / 아이조아한의원 동탄점 심윤지 원장
안재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