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 직후 유럽에서는 극우 반(反)이민, 반유럽연합(EU) 정당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를 과시했다. 이들은 지난해 영국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고립주의의 움직임이 유럽대륙 전역에도 퍼져나갈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21일(현지시간) 유럽의회 내 극우성향 민족자유그룹(ENF) 소속 정당들은 독일 서부 코블렌츠에서 ‘반EU 정상회의’를 열고 각국 선거에서 자국을 최우선에 두는 고립주의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유럽의회 내 교섭단체인 ENF는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네덜란드·오스트리아·벨기에·폴란드·루마니아 등 9개국, 40명의 의원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이 회의를 주도한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FN) 대표는 “우리는 한 세계의 종말과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을 경험하고 있다”며 “‘민족국가(nation-state)’ 도래를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2016년은 앵글로색슨의 세계가 깨어난 해였다”며 “장담하건대 2017년은 유럽대륙 사람들이 깨어나는 해가 될 것”이라며 유럽대륙 내에서도 민족국가가 부활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네덜란드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도 “어제는 새로운 미국, 오늘은 코블렌츠, 그리고 내일은 새로운 유럽”이라고 거들면서 “유럽에 애국주의 봄이 시작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자국에 EU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했던 이들 3명의 대표는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에 한껏 고무돼 자국의 선거에서도 고립주의의 물결이 몰아치기를 기대했다. 이날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북부동맹 대표는 영어로 “우리는 우리의 일자리와 국경과 부를 되돌려 놓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문 일부를 그대로 차용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유럽대륙을 뒤엎은 경제적 위협에 자극받아 부상하고 있는 고립주의는 또 다른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자국 통화를 유지하고 있던 영국과 달리 나머지 EU 회원국들은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경제연구기관의 마르켈 프라츠슈어의 말을 인용해 “올해와 내년을 내다볼 때 가장 큰 리스크는 (탈퇴 여부를 묻는) 제2, 제3의 국민투표”라고 지적하며 “EU 회원국들의 연대를 끊어내는 투표가 결국 유로화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네덜란드는 오는 3월15일, 프랑스는 4월23일과 5월7일에 각각 총선과 1·2차 대선이 예정돼 있다. 독일은 9월에 총선이 열리며 이탈리아 역시 구체적인 일정이 잡히지 않았지만 이르면 가을에 조기 총선이 치러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