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드플래시 반도체 2인자인 일본의 도시바가 수조원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반도체 사업을 분사하고 일부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전망이 구체화하면서 SK하이닉스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SK하이닉스가 새로 설립될 도시바 반도체 자회사에 자금을 출자하고 낸드 기술을 확보할 좋은 기회가 왔다고 전망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 2015년에도 도시바 공장 인수를 검토했던 만큼 다시 한 번 시도할 여지가 크다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현지의 보도를 종합하면 도시바는 올 상반기 중 낸드를 담당한 전자장치 부문을 분사하고 이 자회사 지분을 최대 30~40% 정도 매각한다. 원자력발전소 서비스 사업에서 최대 5,000억엔(약 5조1,5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되자 부랴부랴 자금 마련 방안을 세운 것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미국 디지털 저장장치 업체이자 도시바의 파트너인 웨스턴디지털이 반도체 자회사 지분 20%, 금액으로는 2,000억~3,000억엔 규모를 인수할 것으로 유력시된다. SK하이닉스와 중국 칭화유니그룹도 잠재적 인수 대상자로 손꼽힌다. 도시바는 구체적인 자금 조달 방안을 확정해 다음달 중순께 발표할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는 SK하이닉스가 낸드 성능을 좌우하는 ‘컨트롤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바에 지분을 출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도시바는 지난해 3·4분기 기준 삼성전자(36.6%)에 이어 낸드 점유율 2위(19.8%)에 올라 있다. SK하이닉스는 4위(10.4%)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미국 LAMD나 대만 이노스터의 컨트롤러 사업부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컨트롤러 기술 개발에 공을 들였지만 아직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도시바에 수천억원을 지원하고 기술을 이전받는다면 두 회사가 ‘윈윈’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015년에도 일본 오이타현에 있는 도시바 이미지센서 공장을 인수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 경영진이 검토하는 사이 소니가 선수를 쳐 약 1,800억원에 오이타 공장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오이타 공장 인수 불발과 관련해 “SK하이닉스 경영진으로선 센서 등 시스템 반도체 역량을 키울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던 만큼 도시바 출자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D램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낸드 시장 영향력을 끌어올리는 게 최우선 과제다. 이 회사는 올 상반기 중 72단 3차원(3D) 낸드를 양산해 삼성전자·도시바와의 격차를 좁힌다는 목표다. 또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 공장에 2조2,000억원을 투자해 오는 2019년 6월까지 3D 낸드 전용 공장을 완공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4·4분기를 기점으로 분기 영업이익 1조원 클럽에 재가입하면서 지분 인수를 위한 자금 여유도 커졌다. 전문가들은 오는 26일 발표될 SK하이닉스의 지난 분기 영업이익이 1조3,000억~1조5,000억원에 이르러 5분기 만에 1조원대를 회복한 것으로 확신한다. 올해 전체 영업이익이 5조원 후반~6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많다.
SK하이닉스와 도시바의 협력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SK하이닉스의 지분 출자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두 회사는 2014년 12월 1조원대 기술 유출 관련 소송을 중단했다. 이어 2015년 2월 차세대 메모리 공정 기술의 공동 개발을 포함한 전방위 협력 체제 구축에 합의하고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