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누가 대한민국 내수를 죽이는가

홍준석 생활산업부장

김영란법에 내수 '사망' 일보직전

소상공인·자영업자 한숨만 늘어

정치권, 규제완화·법 개정 나서야

홍준석 생활산업부장




세상을 살다 보면 큰 사건을 예고하는 전조를 감지하게 된다. 작은 지진의 발생 빈도가 잦을수록 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타들어 가는 여름에 저수량이 뚝 떨어지면 대 가뭄을 걱정하게 된다. 뇌졸중이나 치매도 사전에 이상징후가 포착되고 기업의 경우 경영진이나 직원들의 비리가 빈번해지면 무너질 공산이 크다. 나랏일도 예외는 아니다. 권력층의 부패가 만연하거나 공무원들이 나태해지면 그 정권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내수가 딱 그 짝이다. 수출과 더불어 경제를 떠받치는 한 축인 내수는 위독한 중환자실의 환자처럼 심장박동 수가 뚝뚝 떨어지며 위급함의 비상벨을 수시로 울려대고 있다. 지난 2012년 1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따른 대형마트의 영업제한(월 2회 휴무 등)으로 시작된 ‘내수 옥죄기’가 지난해 9월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회복 불능의 치명타를 가하며 ‘내수 사망선고’에 이른 것이다. 마치 응급환자의 인공호흡기마저 뽑은 행위와 다름없다고나 할까.


‘죽어가는 내수’에 대한 전조 증상은 연초 들어 무서우리만치 쏟아진다. 지난주 말 찾은 용산의 한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낯선 풍경이 그랬다. 붐비는 오후 시간인데도 백화점은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산했고 대형마트 선물코너는 선물세트만 잔뜩 쌓아놓은 채 하릴없이 고객을 기다리는 판매사원들이 눈에 더 띄었다. 코트를 사러 들른 남성복 매장 직원은 “명절이 코앞인데도 손님 구경하기 어렵다”며 설 대목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다고 푸념했다. 동네슈퍼나 전통시장도 아닌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평일도 아닌 주말에, 그것도 명절 대목에 장사가 안 된다고 하면 소상공인·자영업자·골목상권 등 더 열악한 환경의 다른 곳들은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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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 내수’는 회사 근처 자주 가는 식당에서도 어김없이 목격된다. 등심·불고기 등을 파는 서소문 음식점인 남강이 지난해 12월31일 폐업한 것이다. 1975년 개업해 IMF 위기도 넘기며 40여년을 버텨왔건만 김영란법의 직격탄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 옆 A일식당 역시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고 한다. 일식당 주인은 “손님이 뚝 끊겨 종업원을 6명에서 2명으로 줄였다”며 “도대체 김영란법이 뭐라고 이렇게 서민들 먹고살기 힘들게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잿빛 내수’에 대해 기업들도 요란하게 경고음을 울린다. 23일 조간신문에는 대형마트 1위인 이마트가 올해 1993년 창사 이래 24년 만에 신규 출점이 ‘제로’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실렸다. 유통법으로 규제가 강화된데다 내수도 불투명하자 성장을 포기한 것이다. 대형마트의 출점을 막고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유통법으로 연간 수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중소업체·농어민·영세업자 등 협력사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소비자의 불편이 커지는 악순환으로 내수기반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서민들의 피눈물과 살려달라는 아우성은 공허한 외침이다. 규제의 칼만이 능사인 양 눈 한번 꿈쩍 안 하는 국회의원·공무원 등 높디높은 위정자에게는 죽어가는 내수는 민초들이 해결해야 할, 무작정 견뎌내야 할 ‘남의 일’이다. 그러니 소상공인들이 지난 16일부터 한파 속에도 국회 앞에서 김영란법 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1인 시위에 나섰던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지난해 말 3,000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55.2%가 매출감소에 시달리는 등 김영란법으로 인한 피해가 막대하다”며 “외식은 물론이고 상반기 국내 꽃집의 20%가 문을 닫을 것 같다”고 울분을 토했다.

벼랑 끝 내수는 이제 전조 단계를 지나 사망 일보 직전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내수 살리기를 위한 특단의 규제 완화나 법 개정이 조속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암울한 정유년의 대한민국 경제는 죽어가는 내수와 더불어 불구덩이 속으로 빠져들 것이 명약관화하다. jshong@sedaily.com

홍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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